반도체업계 ‘중단없는 생산’만이 살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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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급락하는 것은 주식시장만이 아니다. 반도체 가격도 급락하고 있다. 9일 D램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DR2 1Gb의 현물 가격이 1.21달러(7일 기준)까지 내려왔다. 5월 이후 끊임없이 떨어져 연일 최저가를 경신하고 있다. SK증권 박정욱 연구원은 “이 가격은 생산하면 할수록 손실이 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공장을 돌릴수록 돈을 까먹는다면 공장을 멈춰야 한다. 그러나 반도체 공장의 특성상 일단 생산을 멈추면 다시 가동해 정상 수준의 생산 속도를 회복하기 힘들다. 따라서 반도체 업체끼리는 업황 악화에도 끝까지 버티는 일명 ‘치킨 게임’을 벌인다. 치킨게임은 한밤중에 도로의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차를 몰고 돌진, 충돌 직전 핸들을 먼저 꺾는 사람이 지는 경기다. 핸들을 꺾은 이는 겁쟁이가 되지만 끝까지 돌진한 이는 영웅 대접을 받는다. 물론 양쪽 다 핸들을 꺾지 않으면 모두 자멸한다.

반도체 업체들도 경쟁사가 먼저 생산을 중단하거나 쓰러지길 바라면서 한계 상황을 버텨낸다. 이렇게 버텨 살아남은 기업은 공급량과 가격 결정권을 거머쥐는 등 독과점적 지위를 누린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반도체 가격이 약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본다. 공급 과잉 상황이 이어지는 데다 세계 경기둔화로 D램의 주요 사용처인 정보기술(IT) 제품의 수요가 위축돼서다. 치킨게임이 끝나지 않는 한 반도체 업체의 실적이 호전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1등 기업에는 호기가 될 수도 있다. 현대증권 김장열 연구원은 “반도체 가격이 추가 하락하면 키몬다·프로모스 등이 감산하거나 생산을 일시 중단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추가 하락 시 이를 버틸 업체는 결국 삼성전자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게다가 최근 환율 급등은 국내 반도체 기업에 호재다. 현대증권에 따르면 현재 환율 수준이 유지된다면 삼성전자는 7000억원의 이익이 증가하고 하이닉스는 2000억원의 영업손실이 축소되는 효과를 본다. 솔로몬투자증권 김중원 연구원은 “환율 10원 상승 시 삼성전자의 순익은 2.7%, 하이닉스는 0.7%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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