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칼럼>북한 바로 알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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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주 나흘간 남북한 학자들이 함께 모이는 학술토론회에 참석했다.두가지 사실을 필자 스스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나는 북한학자들과 장기간 대화하고 술도 마실 수 있을 만큼남북한 여건이 개선됐다는 점이다.또 하나는 명색 신문 사내 통일문화연구소 책임을 맡고 있지만 북한에 대해 내가 아는게 별로없다는 자기 무식의 확인이었다.
외국여행을 해본 첫 경험이 73년이었다.장관급 두명의 신원보증서가 붙어야 가능했다.대학을 졸업하고 국립대학 무급조교가 되었지만 신원조회 결과 발령이 소급취소되는 연좌제 시절을 살았다.북으로 간 삼촌이 인생의 멍에로 작용했을 때 받 은 당시의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참담했었다.이런 「불령선인(不逞鮮人)」이 북한학자들과 만나는데 아무런 구애를 받지 않게 됐으니세상은 달라져도 많이 달라졌다는 감회가 새삼 일어나지 않을 수없었다. 그러나 남과 북의 출입.만남이 비교적 자유스러워졌다 해도 서로가 상대방을 잘 알고 있느냐는 데는 아직 문제가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30여명의 통일전문가들이 모인 자리지만 서로의 차이점을 보다 분명히 알아야 남북간 대화와 교류가 가 능하다는 인식을 같이 했다.회의 도중 이런 일이 있었다.학술토론이끝나고 저녁식사 시간이 되면 토론내용을 담은 기사대장이 팩스로서울에서 회의장에 전달됐다.『북측 단장인 김구식박사는…민족자주통일을 역설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북 한측 대표들간에 술렁이는 반응에 곧 이어 「역설」같은 용어를 왜 쓰느냐는 항의가있었다. 나쁜 뜻이 아니라 강한 주장을 했다는 표현이라고 납득시키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북한에서 역설은 억지주장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생겨난 혼선이었 다.
학술대회 남측 대표인 백영철교수가 북한학자들과 발표논문을 사전 조정하는 과정에서 남쪽 학자가 쓴 글중 『남북의 지도자에게반성을 촉구한다』는 대목이 문제가 됐다.북측 지도자는 김정일(金正日)비서밖에 없으니 곤란하다는 것이었다.사소 한 언어장애에서 정치체계의 차이가 주는 이해부족만이 아니다.논리의 차이,언술체계의 차이는 더욱 크다.남북 모두가 즐겨 쓰는 「평화」라는용어 자체도 너무 틀리게 쓰인다.남한의 평화구상은 상대방 체제인정을 기반으로 한 정치적.군사적 신뢰구축을 강조하지만,북한은미국과의 불가침협정과 주한미군 철수를 중시한다.남한의 하영선교수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선 정치적.군사적 평화를 기반으로 한 탈근대적 복합구조의 평화를 주장하지만,북한의 원동연박사는 민족자주권 획득이 영구한 평화구축이라고 주장한다.누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추구하는 목표와 수행하는 과정이 사뭇 다르다. 두 현인(賢人)이 호숫가를 거닐며 한담을 하고 있었다.
『저 작은 물고기들이 조용히 노니는 것을 보니 저것이 곧 물고기의 즐거움 아니겠는가.』『자네가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그들의 즐거움을 아는가.』『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찌 내가 물고기의즐거움을 모르는 줄 아는가.』(『장자(莊子)』「추수(秋水)」편에서) 두 현인의 대화에서 나와 남의 관계가 어떤 형식으로 이뤄져야 하나를 짐작해 낼 수 있다.이미 나와 남이 된 관계지만한 핏줄이라는 민족애로 나와 동일시하든지 아니면 남이라는 현실적 인식아래 내가 아닌 남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것인지 분명한 선택을 해야 남북간에 오해와 불신을 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자(莊子)나 혜자(惠子)같은 도사들은 보지 않고 묻지 않아도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고 남의 심중을 헤아릴 수 있겠지만 우리같은 범속인들은 자세히 보고 듣고 묻지 않고선 남을 이해하지도,알지도 못한다.남과 북 서로가 잘 알고 이해하 기 위한 첩경은 바로 교류와 접촉,그리고 대화다.남북한 학자들이 중국땅 호텔방에서 은밀히 모여 벌이는 학술토론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지만 이젠 한걸음 더 나아가 평양과 서울에서 서로를 알고 배우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긴요한 것이 남북한 언론인들의 상호 교류다.
모두가 가서 듣고 보기에 앞서 기자의 눈과 글을 통해 서로를 바로 알 때가 이젠 되었다.한장의 사진이나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듣는 상대방 알기는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더 깊은 오해와 불신을 쌓을 뿐이다.언론인의 방북취재 허용이 곧 북한 바로알기의 출발이라는 인식이 남북한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 확산돼야 남북문제가 제대로 풀릴 수 있을 것이다.
(논설위원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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