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한글 전용은 역사적 흐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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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최근 김종필(金鍾泌) 자민련 총재가 『한글전용법은 사문화됐을뿐만 아니라 세계화 시대에 맞지않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라는데 공감을 얻었다』며 『오는 정기국회에 전용법 폐기안을 낼 방침』이라고 밝힌바 있다.
그런데 金총재가 시대착오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한글전용법이 아니라 그러한 발상 자체다.또 공감을 얻었다고 했는데 누구의 공감을 얻었다는 것인지 묻고싶다.한글전용법을 폐기하려는 사람들은 그들이 얼마나 역사의 흐름을 거역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48년 한글전용법이 제정된 이래 현재 정부가 모든 공문을 한글 전용으로 하고있을 뿐만 아니라 일간신문의 경우 한글사용 비중이 48년 68.4%에서 93년에는 92.7%,96년에는 97.9%로 거의 1백%에 다다르고 있다.
또 모든 학교의 교과서는 물론 각종 문학서적.잡지.학술서적.
박사학위논문.기타 여러 출판물들이 거의 한글로만 출간되고 있다.대학신문을 보면 53년의 『연세춘추』를 시작으로 71년에는 『중대신문』이 한글전용을 했고,지금에 와서는 모든 대학신문이 한글로만 발간되고 있다.또 88년부터는 한겨레신문이 한글전용으로,95년 10월부터는 중앙일보가 가로쓰기를 하면서 한글전용을시작했다.
이와같은 추세는 얼마가지 않아 완전히 한글전용의 세상이 된다는 것을 예언하고 있다.더구나 컴퓨터.정보화 시대를 맞이한 지금에 이르러서는 한글전용을 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상황에이르렀다.현실이 이러한데도 어떻게 한글전용법이 시대착오적이라는데 공감을 얻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일제가 우리 말과 글을 말살하려 할 때 우리 한글학자를 비롯해 민족의 지도자들이 목숨과 재산을 바쳐가며 우리말과 글을 다듬고 닦아서 지켜온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민족과 나라는 말과 글이 없이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었던가.오 늘날 만주족은 땅은 있어도 말과 글이 없기 때문에 민족 본유의 기능을 다할 수 있는 「만주족」은 없지 않던가.
우리의 한글을 천대.멸시하는 행위는 곧 민족과 국가를 천대.
멸시하는 행위다.프랑스가 왜 외래말 사용 금지법을 만들었는지 깊이 살펴야 할 일이다.서구 여러 나라가 라틴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문명화된 여러 나라가 어 떻게 있었겠는가 하는 점도 역사의 교훈으로 배워야 할 것이다.
도도히 흐르는 한글 전용의 역사를 거역하는 일은 참된 국민이면 누구도 원치 않을 것이다.
김승곤 건국대 국문과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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