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향기] 엄마도 울린 '짝퉁' 운동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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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어버이날의 일이다. 아들이 무뚝뚝하긴 했지만, 예전 같으면 꽃을 들고 와 달아주곤 했는데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 이유를 물었더니 돈이 없어 선물은 못하고 이렇게라도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대견스러웠다. 궁색한 넋두리만 늘어놓았지 시원스럽게 아들에게 용돈 한번 주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을까, 방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고, 아내가 방에서 나왔다. 아이의 일기장을 본 모양이다. 방으로 들어가 일기장을 보니 또 한번 아이가 안쓰러웠다.

"엄마, 사달라고 한 운동화는 포기할래요. 먼저 사준 운동화는 진품이 아니라고 친구들이 놀려도 그동안 참았는데 이젠 못 참겠어요. 그래서 사달라고 했던 거예요. 그리고 오늘은 5월 8일 어버이날인데 돈이 없어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 설거지라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선물도 못하면서 더 이상 운동화를 사달라고 하는 것은 제 욕심이겠지요. 이제 새 운동화는 포기할래요."

얼마 전부터 제 엄마한테 운동화를 사달라고 졸랐지만 월급 타면 사 준다며 미뤘던 모양이다. 설움을 참기 힘들어 일기를 적으면서 울었는지 눈물자국이 선명하다. 내용과 흔적을 본 아내는 울음을 터뜨렸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난 나는 나보다 훌쩍 커버린 아이를 감싸 안으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한창 예민한 나이에 얼마나 진품 운동화를 신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며칠 전 달리기를 즐겨하는 내 생일을 맞아 아이들이 마라톤할 때 신으라며 스포츠 양말을 사들고 온 일이 떠올랐다. 난 아이들이 기특했고 정말 행복했다. 그런데 신고 싶은 운동화를 신을 수 없어 아이가 눈물을 찍어가며 일기를 적었을 모습을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아렸다. 얼마나 절망적이었으면 사달라고 한 운동화를 포기한다고 했을까. 그 구절만 떠올리면 마음의 상처가 컸을 아이에게 뭔가 해주고 싶었다.

마침 러닝화가 다 해져가고 있어 조만간 새 걸 구입하려고 모아둔 용돈이 있어 아이의 기를 살려주기로 했다. 운동한답시고 나는 좋은 신발을 사 신으면서 정작 아이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한 것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어 아이 마음에 드는 운동화를 사줬다.

내가 보기엔 썩 내키는 신발은 아니었지만, 요즘 신세대 학생들이 많이 찾는 취향이라며 아이 얼굴이 환해졌다. 속 깊은 아이에게 그렇게라도 해서 어깨를 펴게 해주니 내 마음도 덩달아 환해졌다.

류인복(43.인천시 부평구 산곡3동 현대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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