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과한국인의삶>4.생명과 영혼의 율동으로서의 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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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이라든가 신바람 같은 것은 우리민족 고유의 정서라 할 수 있고,멋 또한 독특한 우리민족의 정서다.그것은 다같이 추상적인 것으로서 복합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으며 의의가 응축되어 있는 언어,즉 표현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표현의 한계를 느끼는 말이기도 하다.그것은 느낌의 세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멋이라 했을 때 맨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일연(一然)이 쓴 『삼국유사(三國遺事)』다.아다시피 삼국유사는 불교적색채가 짙은 사서(史書)지만 한편 우리민족의 정신사라 할 수 있으며 알게 모르게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들 의 식 속의 큰 흐름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삼국유사 속에는 여러 인물들의 행위나 개성이 기술돼 있다.그개성들은 멋으로 나타나는데 그중의 하나로 처용(處容)을 들수 있겠다.노래로 아름다운 자기 아내를 범한 역신을 뉘우치게 한 처용의 감정 처리는 실로 놀라운 정신미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도달한 높은 경지의 정신적 균형으로서의 멋이다.
그리고 또하나 소를 몰고 가던 노인이 벼랑에 핀 꽃을 탐내는수로부인(水路夫人)을 위해 꽃을 꺾어 바치면서 헌화가를 불렀다는 얘기가 있다.
서양에서는 소위 기사도의 전범(典範)으로 돼있는 것이지만 말에서 내리려는 여왕을 위해 물고인 땅바닥에 망토를 벗어 까는 기사,그 정경을 눈 앞에 떠올릴 때 우선 젊음을,그리고 용맹과사랑(헌신)을 감지할 수 있다.그러니까 그것은 현세적 혹은 세속적인 것이라 할 수도 있으며 정열과 욕망을 수반하는 것으로도보여진다.
헌화가의 경우와는 매우 대조적이다.젊음을 초월하고 욕망도 다털어버리고 속세를 떠난 노인의 헌화가가 보여주는 정신적 세계는잡다한 것을 다 생략하고 가장 원천적인 것,균형으로서의 자연 그 자체와도 같은 순수하고 높은 경지를 느낄 수 있다.욕망을 다 걸러 내버린 담백한 자연이 모든 생명에게 베푸는,그러나 그것은 희생이나 친절의 개념과 다른 연민 자비라고나 할까.희생이라는 일방적 부담이나 친절이라는 다분히 냉담하게 유리된 감정과는 다르게 무사(無私)하며 있는 모습 그대로 정직하다고나 할까.그러니까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상태가 최고의 멋의 경지가 아닐는지. 멋은 문화의 산물이다.어쩌다 생각이 나지만 그것이 추상적이건 구체적인 것이든 각기 다른 민족의 문화는 그들 나름의다른 것으로 통합돼 있고 사람과 땅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하나의 구조물같이 튼튼하게 짜여져 있는 것이 참 절묘하다는 느낌인데, 물론 그것에는 긴 세월의 흐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흔히들 전통이라고 하지만 각기 다른 민족,다른 환경 속에서 판이한 문화는 세월만큼 정돈되고 완성을 향해 진행돼 왔다할 수 있을 것이다.해서 역사의 길고 짧 음을 말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그것을 세계화라 말하기도 하고 시간과 거리의 단축에서 온 것이라고도 하지만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민족 혹은 국가는 얻은 것 못지않게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멋이 지닌 의미의 상실이다.또 이질 적인 것의 수용은 균형을 깨고 혼란을 가져온다.진정으로 그러한 이질적인 것이 통합되고 균형을 잡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궁극적인 인류의 꿈이지만 세계의 통합은 문화의 통합이다.앞서 멋은 문화의 산물이라 했지만 반대로 문화 는 멋에 의해 형성된다,그렇게 말한다면 과장일까.문화는 신바람에 의해 이루어지고 한(恨)의 본질을 추구하는데서 진행한다,이말 역시 과장일까.
신바람이나 한에 대해 여기서 설명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이야기가 매우 허술해지지만 멋이 사고와 행위와 생활방식에 관한 미학이라면 신바람은 창조의 기쁨이며 한은 생명의 본질에 대한 물음과 소망이다,하고 불충분하지만 요약해 보았을 때 오 늘과 같이그러한 우리민족의 정서가 축소되거나 배격되는 상황에서는 황당하다 할지 모르지만 과연 확대 해석이 과장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오늘은 문명에 의해 완성된 시대가 아니다.오히려 인류나 모든 생물들은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이대로 문명이 독주하는세계화는 통합의 꿈을 실현하지 못할 것이며 문화에 의한 통합만이 존속의 가능성이 있는데,그러기 위해서는 확대 해 석한 부분은 반드시 부활돼야 한다고 믿는다.
멋은 자연스러운 것,자연스러운 것은 생명 그 자체며 정신이나행동거지에서도 자연스러울 때 멋으로 나타나는 것이다.어떤 물체나 조형 예술도 자연스러울 때 멋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멋은균형이며,균형은 존재하게 하는 것이며,예술가가 작품제작에 임해균형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생명을 추구하는 것이다.
멋이나 신바람과 한,이 세가지 말은 일본어에서는 찾기가 어렵다.굳이 말한다면 멋은 「이키(意氣)」,신바람은 「교오(興)」,한이라는 말은 숫제 해당되는 것이 없다.일본에도 「우리미」로발음되는 한(恨)이 있지만 그것은 다만 원한.원 망일뿐 우리의한이 지니는 생명의 본질에 대한 비애와 소망이 포함돼 있지 않다.「교오」도 재미나다는 단순한 표현일뿐 역시 창조적 기쁨은 없는 말이다.특히 멋에 비등하다고 보는 「이키」도 정신적 미의식이 전적으로 배제된 에로티시즘과 그로테스크가 농후한 일종의 미의식이다.지극히 현세적이며 쾌락적인 것이다.농염한 여인의 모습,단칼에 사람을 베는 무사의 모습,그것에 준한 것에 대한 표현이다. 철저하게 현실적이며 지상적인 것으로 어쩌면 오늘의 일본,소위 자본주의가 성공을 거둔 오늘의 일본은 그같은 맥락으로짚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오늘의 우리나라 현실도 그렇다.이러한 현실을 구가하는 사람도 있고 일본을 선망하는 사람 도 적지 않은데 과연 그것에는 한계가 없겠는가.우리는 그 한계를 지금 눈 앞에 바라보고 있다.이대로 나간다면 인간은 쾌락만을 위해 존재하는 동물이 되고 말 것이며 일하는 기계로 전락하고 말것이며 물질만능은 자연을 피폐하게 하고 생 (生)의 설자리는 없어질 것이다.
***진 정 우리는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이러한 세상을 꿈꾸며 출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문명은 융성하나 사람들은 야만으로 퇴화하고 있는 것이다.현재는 패션쇼의 전성기요,개성의 시대라고도 하고 미스코리아가 관심의 대상이다.또 멋이라는 말도 그런 것에만 집중적으로 쓰여지고 있다.사실 그런 부분에 멋이라는 말이 쓰여지는데 이의가 있을 수 없고 그런 부분이 여분으로있는 것 역시 이상할 것은 없다.
다만 그런 것에만 국한돼 있다는 것이 문제라 생각한다.조형적인 것,색채,인간의 존엄함과는 상관없이 과시한다는 것은 일종의자비(自卑)의식으로도 보여지는 것이다.영혼이 따르지 않는 것,물질의 종이 되어 야기되는 제반 현상은 진정한 멋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멋은 결코 천박한 것은 아니다.아름다운 감정이 흐르는 선(線)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우리 민족의 문화는 멋으로 집약된다고 나는 생각한다.직선은 생경하다.그러나 곡선은 유연하다.그리고 흐름이다.우리의 산천이그러하고 우리의 구조물,의복할 것 없이 일체의 생활용품에도 곡선을 선호한 흔적이 역력하다.
심지어 버선의 코까지,외씨같은 버선발이라는 그야말로 간드러진표현도 바로 그 곡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생명은 율동감이다.흔들리며 배어나오는 영혼의 율동이기도 한 것이다.살아있는 것은 존중돼야 한다.살아있다는 것은 추상적인 것이 며 결코 물질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박경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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