內戰 후유증속 선거준비 순조-내일 보스니아 總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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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9월14일에 다시 전쟁이 시작된다.」 선거를 이틀 앞둔 비하치 시내 곳곳엔 이같은 내용과 제목을 단 회교도 잡지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시내 곳곳에 걸려있는 선거관련 플래카드와 홍보물도 「전범을 용인할 것이냐 아니면 그들을 응징할 것이냐」는등 자못 비장한 구호들로 되어있어 이번 보스니아 총선을 보는 현지 시각을 대변하는듯 했다.
서방 언론은 이번 선거를 「역사적」이라고 치부하고 있지만 현지에서는 「제도화된 민족분쟁」의 시작으로 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비하치 중심지에서 만난 하리스(33)는 『세르비아계에 대한 증오와 두려움은 선거가 치러진다 해서 하루 아침에 사라질성격의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현지의 평화이행군(IFOR)관계자나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관계자들도 비슷한 의견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보스니아 분쟁이후 세르비아계가 회교도들에게자행한 강간.인종청소의 악몽은 아직도 회교도들에게 각인돼 있으며 이것이 선거라는 또다른 형태의 전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세르비아계 또한 회교도들에 대해 비슷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이번 선거가 유엔과 미국의 힘을 이용해 보스니아 회교도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치러지는 선거라며자신들은 절대로 회교도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은 비하치만의 일이 아니다.
선거를 앞두고 있는 모든 선거구가 비슷한 양상이다.곳곳에서 충돌도 발생하고 있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6일에는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인 남자 2명이 총격을 받아 부상했으며 또다른 2명은 누군가에 의해 납치됐다고 전한다.물론 적대세력에 대한 폭력은 세르비아계측이 가해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달 28일에는 세르비아계 경찰이 주택가에서 집수리를 하던회교도 인부들에게 발포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소식통들은 『세르비아계와 더불어 사는 것은 좋은 것』이라면서도 『이것이 가능한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실제 선거당일 사라예보등에서는 민족간 소규모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12일 기자가 돌아본 비하치에서도 이와같은 긴장은 쉽게 느낄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도 선거준비는 속속 진행되고 있었다.비록중무장한 IFOR 소속 병사들의 호위 속이었지만 투표용지를 실은 트럭들이 투표소에 계속 도착하고 있었다.선거감시단으로 나온OSCE 단원들도 투표용지를 검색하느라 눈코뜰 새 없었다.
OSCE 관계자는 『서구적인 의미에서 민주주의가 이곳에서 곧바로 꽃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면서 『우선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를 치르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라고 말했다.
회교도.크로아티아계.세르비아계 세 민족의 타협에 따른 합의보다 미국 주도에 의해 치러지는 선거-그래서 부작용도 예견된 선거.그러나 「민주주의 꽃」인 선거외에는 이들 세민족간 공존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비하치=한경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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