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악플 잡겠다 vs 표현의 자유 지켜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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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씨의 사망은 정치권에도 파장을 일으켰다. 이른바 ‘최진실법’ 논란이다. 한나라당은 3일 인터넷상의 명예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고인을 언급했다. 인터넷 악성 댓글이 그의 사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촛불시위의 주역으로 꼽히는 네티즌의 힘을 꺾기 위한 ‘반(反)촛불법안’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나라당은 다음주 중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고, 민주당은 상임위 단계부터 저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양 당 문방위 상임위 간사인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과 민주당 전병헌 의원에게 쟁점을 던졌다.

-악플 등 인터넷 명예훼손을 어떻게 규제해야 하나.
나경원:별도 법안 마련이 시급하다. 인터넷 게시글로 피해를 본 사람이 삭제·임시차단 등의 조치를 요구했을 때 사업자가 24시간 안에 반드시 처리하도록 하고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해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아도 수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처벌도 오프라인 모욕죄보다 한층 강화할 계획이다. 제한적 실명제는 다음달부터 현행 하루 접속 30만 건 이상 사이트에서 10만 건 이상으로 확대된다. 인터넷 실명제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 결론을 내지 못했다.

전병헌:현행법으로도 규제가 가능하다. 명예훼손죄·모욕죄 등을 인터넷 환경에 그대로 적용하면 된다. 최진실씨의 경우도 고인이 소송을 계속해 범인이 처벌을 받았다면 사회적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을 텐데 안타깝다. 법으로 제재하기보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자율적 정화 기능을 강화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그런 규제 방법을 주장하는 이유는.
나경원:사이버 공간은 세 가지 이유에서 특별하다. ▶소문의 확산이 빠르고 ▶피해 범위가 크며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피해를 복구하기 어렵다. 그래서 허위 사실을 재빨리 차단하고 수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오프라인보다 피해가 큰 만큼 처벌도 강력하게 해야 한다.

전병헌:인터넷은 개방성·자율성·익명성을 생명으로 하는 공간이다. 인터넷을 지나치게 통제하면 활력을 잃어 인터넷·정보기술(IT) 강국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또 입소문은 범인을 찾아내기 어렵지만 인터넷에서는 모든 기록이 증거로 남기 때문에 오히려 추적하기도 쉽다.

-법적 규제, 자율 규제 양쪽 모두 한계가 있는데.
나경원:물론이다. 새 법안에도 삭제 조치에 작성자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조항을 함께 넣었다. 방통위에서 72시간 안에 심의해 결정하도록 했다. 또 내년에는 초등학교 2학년(현행 5학년)부터 학교에서 네티켓 교육을 받도록 했다. 또 ‘선플의 날’ 제정에 힘을 보태는 등 네티즌의 자정 분위기를 유도하고 있다.

전병헌:극단적 악플이나 허위사실 유포에는 고소와 고발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또 방통위에서 각 포털에 악성 게시글을 삭제하거나 임시 차단하도록 하는 조치를 신속하게 취할 필요도 있다. 중요한 점은 이런 강력한 조치들이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터넷 규제 강화를 주장하거나 이에 반대하는 게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나경원:인터넷을 규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사이버 테러의 폭력성은 심각한 수준이다. 야당이 최진실씨를 이용한다고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미 7월부터 꾸준히 추진해 온 법안이다. 고인의 죽음을 계기로 국민적 공감을 얻을수도 있겠지만, 이를 법안과 연결시키려는 의도는 없었다.

전병헌:촛불시위 때문에 이 법안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한나라당의 법안은 인터넷의 기본적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과잉 규제하는 것이다. 인터넷은 평범한 국민이 자신의 의견을 진솔하게 펼칠 수 있는 공간이다. 악성 댓글이라는 벼룩을 잡자고 인터넷이라는 초가삼간을 태워야 하나. 책임 있는 여당이라면 입법을 추진하더라도 최진실씨의 사망을 이용할 게 아니라 오히려 이런 분위기가 가라앉은 뒤 중립적 판단이 가능할 때 해야 할 것이다.

구희령 기자 hea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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