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출 현장일기] 한 사람 인생 퍼즐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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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준 MBC ‘타임머신’ 조연출

역사란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행위다. 적어도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그랬다. 그렇다면 그 뒤에 가려진 '평범한' 사람들의 '자질구레한' 사건을 우리는 어떻게 불러야 할까. 사이비 역사? 아니면 소사(小事)? 그도 아니면 단순한 해프닝?

'타임머신'은 바로 역사에 끼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프로그램이다. 신문 1면에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고, 사회면 맨 구석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자잘한 사건들이 대상이다. 사건 개요라야 기사 10줄을 넘겨주면 고맙고, 주인공은 서울의 김모씨, 부산의 이모양, 뭐 이런 식이다.

자잘한 역사를 현실 속으로 끄집어낸다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주인공 찾기부터 문제다. 짧은 기사 속에 감춰진 실마리들을 더듬어 연락처를 확인한 뒤 취재작가가 조심스레 인터뷰를 시도한다. "저, 전화 받으시는 분이 혹시 1991년도에 술에 취해서 주차된 차량에 불을 지르신 김모 선생님 아니신가요." 인터뷰는 고사하고 욕만 실컷 먹고 전화가 끊어지기 일쑤다.

그래도 어찌어찌 사건의 앞뒤를 설명해줄 정황자료(?)들이 수집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번에는 색다른 정신분석학에 도전해야 한다. "왜 이모씨는 직장 선배의 엉덩이에 ×침을 놓아야 했던 것일까." 황당한 주제에 걸맞지 않은 진지한 회의 속에서 저마다의 상상력이 나래를 편다. 기사 몇 줄의 행간에 감춰진 한 사나이의 고뇌엔 하나둘 살이 붙어가고, 그렇게 완성된 대본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자질구레한 역사가 화면으로 완성된다. 때론 웃음과 함께, 때론 눈물과 함께.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시답지 않은 황당무계한 사건들을 신문 귀퉁이에서 다시 끄집어내는 게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고. 글쎄, 내 대답은 이렇다. 일단 재미있으니까. 그리고 19××년 부산 장전동에 살고있던 김모씨의 삶도 나름대로 소중하니까. 왜냐고? 좋든 싫든 그것이 그 사람의 소중한 '역사'니까. 꼼꼼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한 '시대'가 숨어 있으니까. 내가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박상준 MBC ‘타임머신’ 조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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