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구실 못하는 주택임대차保護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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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세계약기간이 끝나 계약을 경신할 때 도대체 얼마까지 올려 줘야 하나.
서울노원구상계동 6단지 23평형아파트를 지난해 9월 5천7백만원에 계약해 전세를 살고 있는 회사원 裵모(34)씨는 주인과승강이 끝에 1천1백만원을 올려 주기로 하고 27일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주택임대차보호법에 규정하고 있는 인상상한선 5%보다 무려 4배 높은 19.3%를 올려 준 것이다.주택임대차보호법이 세입자의 방패막이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다.
이 법에는 약정한 보증금에 경제사정의 변동으로 인해 인상요인이 발생할 때는 5% 이내에서 집주인이 증액을 요청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 규정은 2년간의 전세계약기간 도중에 가격을 올릴 때만 적용된다.하지만 裵씨처럼 1년계약을 하더라도 2년으로 인정해주기때문에 1년뒤 5%만 올려주고 2년동안은 살 수 있다.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요즘처럼 전세물건이 달리는 상황에서는 세입자가 1년계약서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으며 1년뒤 계약을 경신하면서 5% 상한규정을 고집하기에는 세입자에게 너무 힘이 없다. 그러다 보니 裵씨처럼 주인에게 오히려 사정해 적당한 선에서가격을 올려 줘 버리는 것이다.
정광모 한국소비자연맹회장은 『1년계약을 경신할 때 주인이 전세금을 많이 올려 달라고 해 막막하다며 해결책을 물어 오는 세입자가 많지만 당사자간에 해결하라고 권고하는 게 고작』이라고 말했다.더 큰 문제는 2년간의 계약기간이 만료돼 계약을 경신하는 세입자에게는 5% 상한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유재산이니만큼 당국에서 상한선을 둘 수 없어 세입자만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주인이 원하는 대로 올려 주든지 아니면 집을 비워 주는 수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
◇외국은 어떤가=미국 대부분의 대도시는 물가상승률 이상 임대료를 올리지 못하게 하고 있다.또 세입자가 임대료를 제대로 내지 않거나 주인 자신이 살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입증하지 못하면 세입자를 내몰 수 없도록 돼있다.미국은 또 저소득층에 한해 임대료가 소득의 25% 이상일 때 그 차액을 국고에서보조하기도 한다.
이밖에 스웨덴.노르웨이등 북유럽의 선진국들도 강력한 임대료 통제정책을 쓰고 있다.
이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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