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옥영화 고전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18년만에 국내개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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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비디오로 먼저 출시돼 한때 국내 영화광 사이에서 탈옥영화의 고전처럼 회자됐던 『미드나잇 익스프레스』가 제작된지 18년만에뒤늦게 개봉된다.
올리버 스톤의 각본과 조르주 모로도의 음악이 아카데미상을 받는등 상당한 주목을 끌었던 이 영화가 제때 개봉되지 못했던 것은 78년 제작된 이후 그간 군사정권의 수입금지 조치에 묶여 있었기 때문.그러다 이번에 수입사인 율가필름이 『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이지 라이더』등 오래됐지만 극장에서 볼 수 없었던 유명 작품들의 수입을 기획한 덕분에 운좋게 다시 햇빛을 보게 됐다.
군사정권 아래서 수입이 금지됐다고 해 이 영화가 반체제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내용 자체는 전형적인 탈옥영화다. 빌리 헤인스(브래드 데이비스)는 21세때인 1970년 여자친구와 여행갔다 돌아오는 길에 마약을 소지했다가 터키공항에서 체포된다.터키 군부가 독재를 하던 당시는 미국과 터키의 관계가최악으로 치닫고 있을 때.
헤인스는 첫 재판에서 4년형을 선고받고 얌전히 복역하지만 출소일을 50일 앞둔 시점에서 다시 재판을 받게 된다.헤인스를 중형에 처해 국제사회로부터 마약의 온상으로 비난받고 있는 터키의 이미지를 바꿔놓으려는 검찰의 항소 때문이었다.
이 재판에서 헤인스는 30년형을 선고받는다.재수감된 헤인스는「미드나잇 익스프레스」(탈옥을 뜻하는 은어)를 타기로 결심한다.그러나 동료 맥스와 함께 시도한 첫번째 탈옥 계획은 사전에 발각돼 참담한 실패로 끝난다.맥스는 심한 고문에 정신이상자가 되고 헤인스도 밀고자를 살해한뒤 정신병동에 수감된다.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엉뚱한 곳에서 손짓한다.
이 얘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철저히 탈옥영화의 문법에 맞게 각색됐다.탈옥의 주인공은 대개 무죄인 경우가 많다.그래야관객에게 탈옥에 열광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여기에서 헤인스는 분명 실정법을 위반한 범죄자다.그 문제는 마약 2백을 밀매하려한 죄는 이미 헤인스가 치른 4년의 형기로 충분하다는 논리로 해결된다.
이후 헤인스의 탈출 시도는 자유를 향한 영웅적 행위로 미화되고 교도소 안의 상황은 인권유린의 표본실처럼 극명하게 대비된다.이 과정에서 앨런 파커 감독은 빛과 어둠을 교차시킨 현란한 영상으로 터키를 돼지우리 같은 곳으로 비하시킨다.
『빠삐용』『쇼생크 탈출』처럼 자국을 무대로 한 탈옥영화에서는볼 수 없었던 백인 우월주의가 정서적 공감을 해친다.
CF감독 출신인 앨런 파커의 화려한 영상을 스크린으로 본다는것과 여자친구가 면회왔을 때 옷을 벗으라고 하고 그 앞에서 헤인스가 자위하는 명장면이 복원된데서 이번 개봉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듯.
남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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