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자로가는길>문경 사불산 윤필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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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여름 소낙비가 내린다.우산을 펴서 산길을 오르지만 바지가 금세 젖어 버린다.다행히 입구에서 고려 충렬왕 때 지어졌다는 윤필암(閏筆庵)까지는 산길이 잘 닦여 있고,암자 가는 길치고는 거리가 짧다.하긴 나그네는 부근에 식당이 단 한군 데도 없었으므로 비를 맞는 것보다는 허기를 참는게 더 고역이었다.
암자의 처마 밑에서 내리는 비를 피하는데,사불산(四佛山)이 가깝게 다가선다.저 너머가 대승사이리라.사불산이란 산의 정상에사불(四佛)이 새겨진 암석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붙여졌을것이다.올라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삼국유사」 에도 나오고,윤필암 사불전(四佛殿)이 여느 법당과 달리 무불(無佛)인 것을 보면 틀림없는 것 같다.
사불전에서 멀리 보이는 사불에 참예하고 내려오자,한 비구니 스님이 점심 공양은 했느냐고 묻는다.그래서 스님이 안내하는 부엌으로 가 밥과 따뜻한 국물 앞에 앉아 합장을 해본다.나그네를위해 수고해 데운 국물만큼이나 따뜻한 마음씨가 엿보이는 비구니스님이다.바로 그런 마음을 싹틔우기 위해 수행을 하는 것은 아닐까. 윤필암은 청담스님의 둘째딸이 출가 수행했던 암자다.스님은 해방전 한 사찰의 초청으로 진주로 내려가 거기에서 법문을 하게 된다.그런데 스님이 법문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 속가의 홀어머니가 오신 것이었다.법문이 끝나자 스님의 어머니는 스님의 장삼자락을 붙잡고 통사정을 한다.유언을 할 것이 있으니 속가로가자는 것이었다.할 수 없이 스님은 속가로 가게 되고 어머니의유언 아닌 유언을 듣게 된다.
그것은 첫째가 딸이므로 손(孫)이 끊어지지 않게 출가 전의 아내였던 차씨 부인과 하룻밤만 자고 가라는 것.바로 그 자식이청담스님의 둘째딸이 됐고,오늘날 봉녕사의 묘엄(妙嚴)스님이다.
그러나 속가 홀어머니도 늘그막에는 청담스님에게나 차씨 부인에게죄를 많이 지었다며 자책했다고 한다.그런 자책이 있었기에 노모도 자식인 청담스님의 안내를 받아 김천 직지사로 가 성인(性仁)이란 법명을 받아 출가를 했던 것이다.
윤필암은 선방인 사불선원(四佛禪院)이 있는 암자라서 그런지 거룩한 분위기기 느껴진다.참선하는 스님들이 즐겨 드는 무(無)자 화두가 공기 자체에 가득차 있다고나 할까.무라! 무라! 하는 외침이 암자의 고요속에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 같다.세속의 저자거리에서 찌든 몸과 영혼이 그런 공기에 세척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무란 우리들의 영혼에 때처럼 낀 지독한 찌꺼기들을 말끔히 지워버리는 정신의 지우개 같은 것이 아닐까.
윤필암은 대승사를 가다 보면 왼편으로 가는 산길이 나오는데 암자의 출입을 통제하는 곳에서 10분쯤의 거리에 있다.(0581)52-7110.
글 =정찬주(소설가) 사진=김홍희(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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