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週를열며>참여와 超脫을 겸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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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나는 바다를 참 좋아한다.바람을 받고 달려가는 돛단배는 더욱이나 멋있어 보인다.도반들과 함께 통영 앞바다에 돛을 올렸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기대와 달리 승선자들은 심심하다는 것이다.나도 답답함을 느끼게 되었다.그토록 멋있어 보 이는 돛단배를 타는 것이 고독을 맛보는 일이 될 줄은 몰랐다.
나는 한때 조계사에서 도감직을 맡은 적이 있다.공양주 보살들을 통솔하면서 대중 스님들의 음식을 준비하는,아주 보잘 것 없는 말단직이었다.그렇지만 소임을 더욱 잘 해보고 싶은 나는 부하격인 공양주 담당 노인들을 닦달하게 되었다.나중 에는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고 위협하기에 이르렀다.어느날 그런 말을 하는 흉측한 나 자신을 돌아보고 깜짝 놀랐다.
배타는 일은 보는 사람에게는 좋게 생각되지만 배를 타고 있는사람에게는 고독을 준다.반대로 어떤 직무에 매달려 그것으로부터나오는 힘을 함부로 쓰게 되면 당사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한다고 하겠지만 밖에서 보는 사람에게는 이 성을 잃은 힘의남용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배를 타면서도 고독하지 않고,크고 작은권력을 잡고 일을 하면서도 집착(執着)하지 않을 수 있을까.이물음은 가정이나 사회에도 똑같이 중요하다.사람은 조직의 배에 탈 수밖에 없고,남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 기 때문이다.
대답은 간단하다.어떤 일에 직접 참여하는 입장과,그것으로부터벗어난 입장 사이를 찰나 찰나 드나드는 것 또는 두 입장을 겸하는 것이다.관객을 염두에 두는 연기자는 좀더 연기를 잘 할 수 있을 것이고,연기자 입장을 생각하는 관객은 연극을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만명의 대학생을 동원하고,5천여명을 1주일 넘게 묶어둘 수있는 대단한 힘을 가진 한총련이 국민의 입장에서 자신을 돌아볼줄 알았다면 다른 진보세력의 기(氣)마저 꺾는 일을 저지르지 않았으리라.화염병을 던지기보다 차라리 두들겨맞 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해야 했을 것이다.
불교는 두 입장을 끊임없이 넘나드는 법을 가르치려고 한다.먼저 성철스님이 사용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를 생각해 보자.현재 나의 입장에서 볼 때 분명히 산은 산이다.그러나 만물이 공(空)한 상태에 있고 사람 이 이름을 지어 붙여서 세상을 본다는 것을 생각하면 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다.한 단계 더 나아가 동서남북이 본래 없지만 편의상 임시로이름을 붙인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다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산과 물의 긍정과 부정은 무한정 계속돼야 하지만 세 단계로 줄여 세간과 출세간,참여와 초탈(超脫)의 끊임없는 왕래를 나타내려고 한 것이다.
『법화경』 법사공덕품은 우리의 수행 목적이 자신이 현재 처한입장으로부터 벗어나 모든 사람의 처지를 깨닫는 것이라고 가르친다.수행이 깊어지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눈.귀.코.혀등의 여섯가지 감각기관을 얻게 되는데 그 감각기관들은 천상에 있는 좋은 것들 뿐만 아니라 지옥이나 아귀세계에 있는 나쁜 것들까지 사그리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내가 각 방면 각 층의 처지를 본다는 것은 나를 벗어난 입장에서 나를 바라본다는 뜻이다. 우리에게는 다시 이런 물음이 떠오른다.많은 사람들은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입장도 생각하면서 각기 나름대로의 일을 도모하게 되는데,왜 일을 그르치고 고통을 당하게 되느냐는 것이다.그것은 참으로 자기를 떠나서 사물을 보지 않기때문이다.자기 또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아무리 자기를 벗어나려고 해도 허사가 된다.나를 지우는 일이 선행돼야만 내가 밖을 보면서도 동시에 밖에서 나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석지명 청계사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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