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뛰는방송인>5.스타일리스트 장수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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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TV드라마 제작분야에도 전문화 바람이 일고 있다.미국.유럽등영상물 제작 선진국에 비하면 때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전문화는거역할 수 없는 대세다.
전문화의 첨단에 장수진(38)씨가 서 있다.명함에 적혀있는 그의 직함은 「스타일리스트」.생소한 이 직업의 세계를 그는 이렇게 풀어낸다.
『사전적 의미로는 새로운 모드를 창출하는 사람이다.구체적으로말해 드라마 기획단계부터 참여해 출연자의 패션.이미지.세트장식.영상 톤(색조)등을 작품의도에 맞게 조율하는 역할이다.』 드라마 구성요소는 크게 내용(줄거리.구성)과 스타일로 나눠진다.
스타일리스트는 바로 스타일,즉 영화로 치면 미장센을 책임지는 막중한 역할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분야에 대한 방송계의 이해는 초보단계다.
『외국에서는 프로덕션 디자이너라 부른다.잘 만들어진 외국영화에서 보듯 스타일은 작품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기존의의상.소품담당등 스태프와 의견이 상충될 때 가장 곤혹스럽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전체적인 조화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장씨의 업적은 그가 참여한 작품들을 통해 일단 평가해볼 수 있다.그의 손과 머리가 들어간 작품은 분명 기존 드라마와는 일정한 차별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알게 모르게 드라마를 살찌우는데공헌했다는 얘기다.
미국 뉴욕의 디자인 명문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를 졸업한 후 11년간 밀라노.
파리 등지에서 실무경험을 쌓고 재작년 귀국했다.귀국하자마자 「뜻한 바 있어」 그는 MBC를 찾아가 스타일리스트 란 새로운 개념을 책임있는 방송인들에게 설명했다.그래서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 작품이 『사랑을 그대 품안에』다.
차인표.신애라를 결혼으로까지 맺어준 이 드라마의 탄생은 신선했다.전혀 다른 영상과 색조.분위기가 드라마를 휘감았다.「트렌드물」이라는 컨셉트에 맞게 영상이 따라왔고 그야말로 새로운 모드가 창출됐다.인기는 당연했다.『의상.소품.세트등 에 50%의내 노력이 첨가됐다.색조는 「재즈와인」이었다.소품을 통해 동제품을 유행시켰다.바로 이 작품은 뒤에 나온 이른바 「색조드라마」의 효시가 됐다.』 장씨는 그후 MBC의 『호텔』『M』『아파트』『TV시티』에 이어 SBS의 『사랑의 이름으로』『도시남녀』『8월의 신부』에 이르기까지 정신없이 드라마에 맞는 스타일을 만드는데 몰두하고 있다.그러나 아직도 오만하지 않고 늘 배우는자세로 제작에 참여한다.
『신경써야할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다.조명이 투여됐을 때 실제로 화면에 나타나는 색채변화를 읽을 줄 알아야 하고 카메라 앵글까지 예측해야 한다.열악한 우리 드라마의 제작여건에서 내 욕심만 고집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가 최고로 치는 드라마는역시 연기.연출.스타일리스트.기타 스태프들의 장점이 결코 「튀지 않고」 조화를 이룬 작품.장씨는 그런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면 지금 당장 그만둬도 좋다는 각오로 일한다고 한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인 아버지(장천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그는 『돈을 벌어 재량권이 보장되는 상태에서 일할 수 있는 형편이 되면 꼭 영화에도 참여하고 싶다』며 의욕을 보였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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