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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공휴일 축소 재고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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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근 행정자치부는 정부 산하에 '국경일 및 공휴일 조정기획단'을 만들어 현행 17일간의 법정공휴일을 2~3일 정도 줄여 2006년 입법예고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오는 7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는 주5일 근무에 따른 근무시간 단축과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휴일 수가 많다는 이유를 들었다. 실제로 우리나라 공휴일은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등 4대 국경일, 그리고 식목일, 어린이날 등과 5.1 근로자의 날까지 포함해 연간 17일이다.

대만(19일)보다는 적지만 일본(15일), 스페인(14일), 오스트리아(13일), 핀란드.노르웨이.포르투갈(12일), 프랑스.스웨덴.싱가포르(11일), 벨기에.독일.이탈리아.미국(10일)보다는 2~7일이 많다. 우리의 고유 명절인 설날과 한가위 때문으로 보이지만 어쨌든 수치로는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외국의 법정 공휴일이 일요일과 겹친 경우 다음날인 월요일에 그 공휴일의 효력 연장이 인정되지만 우리나라는 그 효력이 자동 소멸된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일본과 싱가포르는 공휴일과 주휴일(토.일)이 겹치면 다음날, 즉 월요일이 유급 공휴일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공휴일 3분의 1 이상이 주말 휴일과 겹치기 때문에 있으나마나한 공휴일이 된다. 기업 규모에 따라 주5일 근무제가 처음 도입되는 올해만 해도 17일 가운데 무려 6일이 주말과 겹쳤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은 토요일이고 6월 6일 현충일은 일요일이며, 제헌절(7.17)과 성탄절(12.25)은 토요일, 광복절(8.15)과 개천절(10.3)은 일요일과 겹친다. 미국은 연간 공휴일이 10일이지만 현충일은 5월 마지막 월요일, 근로자의 날은 9월 첫째 월요일, 추수감사절은 11월 넷째 목요일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아예 공휴일이 겹치지 않게 배려했고, 주마다 적용되는 공휴일이 따로 있어 공휴일이 많은 주는 17일에 이른다.

심지어 공휴일과 토.일요일 사이에 끼어 있는 '샌드위치 데이'도 연속휴일을 보장해 휴식과 휴가를 장려하는 나라도 여럿 있다. 그러나 우리는 '샌드위치 데이'는 고사하고 겹치는 공휴일도 찾아 쉴 수 없게 돼 있다. 결국 일본 공휴일 15일은 모두 쉬는 날이지만, 한국은 법에 17일로 돼 있을 뿐 실제로는 11일밖에 안 되는 것이다. 만약 지금의 법정 공휴일을 사흘 줄이면 실제 우리 근로자의 여가시간이나 쉬는 공휴일은 그보다 더 줄어들게 된다.

정부와 국회는 지난해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면서 2004년 7월 10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시작해 2005년 7월 300인, 2006년 7월 100인, 2007년 7월 50인, 2008년 7월 20인 이상 사업장에서 각각 실시하되 20인 미만 영세사업장은 2011년까지 도입하기로 정해 놓았다. 그렇다면 소규모 영세업체에 다니는 다수의 근로자는 주5일 혜택도 보기 전에 공휴일부터 빼앗기게 되는 셈이다.

나아가 이렇게 되면 공휴일뿐 아니라 연차휴가.주말휴가 등에서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실제로 쉴 수 있는 날이 부족한 게 직장인의 처지가 된다. 또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한달 하루 휴가만 있을 뿐 추가 휴가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잖아도 한국의 근로자는 세계적으로 일벌레라는 비아냥 소리를 들어 왔다. 1인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200여개 나라 가운데 일곱번째로 길다.

공휴일 2~3일 줄이는 게 뭐 대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 일은 직장 다니는 1400만 노동자와 그 가족을 포함한 3000만 노동가족의 생활과 밀접히 관련된 문제다. 과거 경제가 어려우면 으레 정부는 공휴일수를 끄집어 냈고 또 실제로 공휴일을 줄여 왔다. 하지만 공휴일을 줄여 우리의 경제가 나아졌다는 경제 발표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주5일 근무제는 일반 다수의 저임금 노동 근로자들에게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와 같다.

따라서 정부는 양지에 있는 소수의 근로자만을 기준으로 하는 법정공휴일 단축에 대한 계획을 마땅히 재고해야 할 것이다.

박명식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