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신 1년 만에 27초 단축 … 빨라지는 ‘마라톤의 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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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브르셀라시에가 자신의 기록이 쓰인 시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베를린 AFP=연합뉴스]

 

올 1월 두바이국제마라톤에서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35·에티오피아)가 역대 2위 기록인 2시간4분53초로 우승하자 세계 육상계의 관심은 그의 올림픽 출전 여부에 모아졌다.

그는 1996년 애틀랜타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육상 남자 1만m에서 2관왕에 올랐던 트랙 장거리의 ‘황제’였다. 하지만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채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케네니사 베켈레(에티오피아)에게 밀려 5위에 그치자 마라톤으로 전향했다. 그런 그의 베이징 올림픽 마라톤 우승 여부는 최대 관심사였다.

하지만 그는 “천식 증세 때문에 대기오염이 심한 베이징에서 마라톤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불출전을 선언했다. 대신 1만m에 도전했지만 또다시 베켈레에게 밀려 6위에 그쳤다. 하지만 올림픽 폐막 한 달 만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2시간3분대(2시간3분59초)에 진입하면서 화려하게 한 해를 마감하게 됐다.

게브르셀라시에가 세계 최고기록을 경신한 이날 레이스 조건은 최고였다. 아침 8도였던 기온은 낮이 되면서 13도로 올라갔다. 따뜻한 햇볕 덕분에 체감온도는 16도였다. 마라톤에는 최적이었다. ‘기록의 산실’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베를린 마라톤 코스는 평탄하기로 이름 높다. 그런 가운데 한 가지 변수가 발생했다. 게브르셀라시에가 가벼운 장딴지 부상으로 대회 보름 전부터 1주일가량 훈련을 못 한 것이다. 1주일의 훈련만으로 레이스에 도전했다.

대회 3연패를 바라보는 게브르셀라시에는 초반부터 경쾌한 레이스를 펼쳤다. 하프 지점 통과기록이 1시간2분5초. 지난해 세계기록 수립 때보다 25초나 빨랐다. 초반부터 게브르셀라시에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따라왔던 경쟁자들도 그가 더욱 속도를 높인 36㎞ 지점부터는 뒤로 처졌다. 지난해 이 대회 우승 뒤 “2시간3분대도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그는 약속을 지켰다. 그는 내년 같은 코스에서 열릴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임을 재확인했다.

육상 1만m에서 올림픽 2연패(1996, 2000년), 세계육상선수권 4연패(93, 95, 97, 99년)를 달성한 게브르셀라시에는 2004년 마라톤으로 전향했다. 트랙에서 펼쳐지는 1만m는 도로 경기인 마라톤과 달리 초반부터 스피디하게 경기를 운영하는 종목. 게브르셀라시에는 1만m식 레이스를 마라톤에 접목시켰다. 그의 등장 이후 마라톤은 지구력보다 스피드 경쟁이 됐고, 기록 단축 주기도 훨씬 짧아졌다.

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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