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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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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꽃피는 팔도강산’은 40대 이상에게는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추억의 드라마다. 1967~75년까지 5편의 영화와 TV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김희갑·황정순 부부가 전국 각지에 사는 자식들을 찾아가 경제 발전의 모습을 확인하는 내용이다.

출발은 67년 영화 ‘팔도강산’이다. 원래 아이디어는 김희갑이 냈다. 김희갑은 책 『어느 광대의 사랑』에서 66년 공보부 장관이 자신을 찾아와 “‘팔도강산’을 공보부에서 제작하려 한다. 내년 6대 대통령 선거가 있는데 잘 찍으면 홍보용으로 아주 걸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국책홍보영화로 탄생한 ‘팔도강산’은 서울 국도극장에서 개봉해 32만6000명이 관람하며 히트했다. 야당(신민당)은 경제 발전이라는 공화당의 치적을 선전하는 내용이 선거법 위반이라고 문제 삼았으나 소용없었다. 68년에는 ‘속 팔도강산-세계를 간다’가 만들어졌다. 김희갑이 세계 각국에 나가 있는 사위들을 만나러 가는 내용이다. 세계로 뻗어 나가는 한국인을 그린 셈이다.

시리즈는 그 후 ‘내일의 팔도강산’(1971), ‘아름다운 팔도강산’(1971), ‘우리의 팔도강산’ (1972) 등 총 5편으로 이어졌다. ‘내일의 팔도강산’에는 패티 김이 부른 ‘서울의 찬가’가 삽입됐고, ‘우리의 팔도강산’에는 서울 지하철 건설현장과 새마을운동이 담겼다. 영화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무대가 TV로 바뀌었다. KBS 일일극 ‘꽃피는 팔도강산’은 74~75년 398회 방영되며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시청률도 40%대에 달했다. 딸과 사위를 대한항공과 포항제철 직원으로 설정해 해당 기업을 찾았다. 최희준은 “잘 살고 못 사는 게 팔자만은 아니더라. 잘 살고 못 사는 게 마음먹기 달렸더라”라는 주제곡을 불렀다.

『조국 근대화를 유람하기』의 김한상은 “대중성을 잃지 않은 가족 코미디이자 박정희 시대의 대표적인 민관 합작 프로파간다, 가장 성공적인 정권 홍보 이벤트”라고 평했다.

때마침 MBC가 방영 중인 중국 드라마 ‘종착역’은 ‘꽃피는 팔도강산’의 리메이크다. 중국 배우와 중국 스태프가 중국에서 찍었다. 김한상은 “개발 열풍이 한창인 중국이 역시 개발시대 한국에서 선풍을 일으켰던 드라마를 벤치마킹했다”고 주목했다. 70년대 국내 버전의 노골적인 ‘개발 찬가’와 달리 가족애를 내세웠다고는 하나, 흥미로운 관람 포인트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