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 안 보고 체험학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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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초·중·고생들의 학업성취도를 평가하기 위해 10년 만에 부활되는 ‘일제고사’에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이 ‘불참 운동’을 선언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다음달 초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 3학년과 6학년, 중3, 고1 학생을 대상으로 시험을 치를 예정이다. 교사들이 학생 개인의 성적을 제대로 파악해 지도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전교조 서울지부를 비롯한 단체들은 “학생들을 경쟁으로 내모는 줄 세우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전교조 서울지부 등 6개 시민사회단체는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교육청이 학생들에게 한날한시에 똑같은 문제지로 일제히 시험을 치르게 해 획일화된 성적순 한 줄 세우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일제고사를 철회하지 않으면 불참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일제고사 날 체험학습”=일제고사 반대 운동에는 ▶전교조 서울지부 ▶평등교육학부모회 ▶진보신당 ▶민주노총 서울지부 ▶사회진보연대 ▶청소년 인권단체 관계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와 교육청이 일제고사에 불참하는 학생을 위한 ‘대체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일제고사 불참 학생과 학부모 대상 ‘교외 체험학습 프로그램’ 추진 ▶일제고사 중지 가처분신청 제기 등으로 맞서겠다고 주장했다.

단체들은 교외 체험학습을 실시할 장소와 차편까지 마련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경희 평등교육학부모회 사무국장은 “체험학습 장소는 유명산으로 정했고, 학생과 학부모가 탈 45인승 버스 12대도 마련하기로 했다”며 “수백 명쯤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들 단체가 모여 만든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서울시민모임’ 홈페이지에는 ‘일제고사 반대, 성적 집적 거부, 체험학습 실시 사업 제안서’도 올라 있다. 이에 따르면 생태체험학습을 위해 지도교사 사전 교육을 25일부터 사흘간 실시한다. 다음달 2~4일에는 유명산 현장답사도 한다. “학부모들이 일제고사 반대 의견서를 학교에 보내도록 적극 홍보하라” “체험학습이 끝난 뒤 열리는 촛불집회에도 최대한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조직해 달라”는 내용도 있다.

◆시험 예정대로 치른다=전교조는 ‘MB식 교육정책 및 일제고사 저지를 위한 전국교육주체결의대회’를 27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 예정이다. 국민에게 학력 경쟁만 부추기는 시험의 문제점을 알리겠다는 것이다. 전교조의 한 조합원은 “교원평가제 같은 사안보다는 일제고사 반대 운동이 학생과 학부모 호응을 얻기 좋을 것”이라고 했다.

교과부는 예정대로 시험을 치른다는 방침이다. 학교장 승인이 없는 체험학습은 결석 처리 대상이라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교과부 학력증진지원과 김동호 교육연구사는 “초·중등교육법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학교장이 학업성취도를 측정하기 위해 실시하는 평가에 응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가에 응하지 않으면 시·도교육청이 사유와 공무원 복무 규정 등을 검토해 사안에 따라 징계를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총 김동석 대변인은 “평가도 교육의 중요한 과정인데 이를 부정하고 집단적·물리적 행위로 막는다면 학교에 혼란과 갈등이 발생해 결국 그 피해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아간다”며 “불참운동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백일현 기자

◆일제고사=전국 또는 도 단위로 같은 학년이 같은 시간에 일제히 치르는 시험. 올해는 모든 초등 3년을 대상으로 읽기·쓰기·기초수학을 평가하는 기초학력 진단평가(10월 8일)와 초등 6, 중 3, 고 1이 국어·수학·영어·사회·과학 시험을 치르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10월 14~15일)가 예정돼 있다. 두 시험은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학생 부담을 이유로 전체 학생의 일부(3% 전후)만 표집해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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