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 정체성 혼란 보이는 '민주주의 2.0'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개설해 출범 전부터 정치 개입 우려 등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민주주의 2.0(www.democracy2.kr)'이 초반 정체성 확립에 혼란을 겪고 있다. 토론자들 사이에 '아고라'와의 차별성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고, 노 전 대통령의 정치 개입에 대한 비난도 격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당초 목표한 건강한 토론마당이 될 수 있을지 우려를 낳고 있다.

노 전 대통령측은 '민주주의 2.0'의 개설 목적을 '시민주권시대를 열어가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토론마당'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이트 소개 글에도 "단지 무엇을 옹호하고 반대하는 주장만 펼치는 수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근거가 되는 사실을 제시하고 그 사실을 함께 검증하고 토론을 통해 생각을 수렴해나가는 과정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라고 설명돼 있다.

그러나 개설 1주일도 되지 않아 토론 참가자들 사이에는 '제2의 아고라'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정치 불개입'을 선언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적 글을 올리면서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민주주의 2.0 사이트에는 다음의 '아고라'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상당수 참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ID '전화'는 '아직도 이곳이 아고라 분점으로 보이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현재 이 사이트에는 아고라에서 유입된 인원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얻는 것은 아직 아고라에 비해 기능으로 보나 무엇으로 보나 떨어지는 소형 사이트 분점 하나"라고 비판했다.

이 글은 곧바로 100여 개의 댓글이 달리는 등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을 '아고라에서 넘어온 사람'이라고 소개한 ID '해는달이꾸는꿈'은 "요즘 아고라는 자신과 조금이라도 의견이 다르면 무조건 비난이 따른다”면서 "아고라에서 2.0으로 넘어오신 분 대부분은 그와 같은 분위기에서의 염증과 흔히 '알바'라 불리우는 기계들에게 지쳐 넘어오신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현재 대부분은 2.0의 주제에 맞게 글을 써나가려고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토론의 장이라면 그 모든 것을 소화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주장했다. 또 ID '하늘에뜬바다'는 "지금 아고리언들은 분명 문제가 심각합니다. 스스로 되돌아봐야 할 시점입니다"라며 공감을 표시했다.

또 "몇몇 미꾸라지들 때문에 흙탕이 된 아고라를 보라. 그들을 처음부터 제지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 2.0도) 곧 그들의 '도배질'에 아고라 꼴이 나고 말 것"이라는 등 우려의 글도 많았다.

반대의 글도 적지 않다. ID '하얀설원'은 "자신의 생계까지 내버려두며 신념을 위해 싸워 온 이들이 가득한 장소가 아고라"라고 말했다. "차라리 이 사이트에 노무현 전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안 왔으면 좋겠다"라는 댓글도 있었다.

사이트의 '주인'인 노 전대통령(필명 ‘노공이산’)에 대한 논란도 분분하다. 전직 대통령의 정치 현안 개입 등 사이트는 설립전부터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지만 노 전대통령은 "정치 현안에는 개입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었다.

그러나 노 전대통령이 최근 "호남 출신 의원들이 민주당을 망치고 있다" 등의 글을 올리는 등 정치 이슈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개진하자 파장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호남에 대한 발언은 신중히 해달라.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거나 “뽑아줬더니 서운하다”등 노 전 대통령이 가장 싫어 하는 '지역 감정 싸움'의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인터넷 전문가들은 "중요한 것은 토론사이트가 아니라 토론하는 사람들의 자질"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민주주의 2.0 사이트가 본래의 목적 처럼 건강한 토론마당이 돼갈지 주목된다.

김진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