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週를열며>나의 형제요 자매인 '自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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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무더운 날씨와 더불어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됐다.학교생활에서해방된 학생들의 여름방학이 한창이고,요즘은 공장과 사무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인들도 1주일 내외의 피서철을 맞고있다.이 바캉스철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향산천 을 찾고 대자연의 쾌적함과 아름다움 안에서 도시문명의 번잡함과 분주함으로 누적된 심신의 피로를 풀고 자칫 메마르기 쉬운 인간 본래인 모습을 되돌아보고 회복하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된다.숲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심산유곡의 물소리,새들 의 지저귐에 귀를 기울이고이름모를 들꽃의 하늘거림에 시선을 던질 때 인간이 돌아가야 할고향인 태고(太古)의 신비를 불현듯 떠올리며 향수에 젖게 된다.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소중함과 우리 역시 이 우주와 대자연의 일부라는 인 간의 기본 처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며 동시에 세계내존재(世界內存在)라는 이한계성의 자각은 오늘날 점점 더 심각해지는 지구환경의 위기 앞에서 절박한 요청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예전에 비해 환경문제의 중요성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관심과 의식 이 현격히 높아지고 확산된건 참으로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현상이다.그렇지만 아무리 환경문제개선을 위해 애써봐야 상황은 쉽게 호전되지 않는다는 무력감과 자괴감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70년대의 온산지역보다 더 심각하게 오염돼 집단이주 가 불가피하게 된 여천석유화학공단의 공해피해에 이어 동양최대의 담수호로 지칭되던 시화호가 완전히 폐수가 되고,이 오염된 물을 서해안으로 방류해 인근 연안생태계의 파괴가 크게 우려되고 있다.
빈번히 발생하는 서울의 스모그현상과 오존주의보발령은 대기오염의 심각성이 시민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말해준다.우리가 당면한 환경문제의 위기는 국민 개인의 노력과 의지를 무력하게 하는 구조적 모순들,즉 국가의 환경정책을 좌 우하고 주도하는 기술경제관료층의 환경윤리빈곤과 철학부재(不在)에서 비롯된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진보와 발전의 기준을 경제성과 상업성,효율과 공리성으로만 보고 모든 것을 평가하고 측정하려는 가치관이 우위에 서는 한 자연환경은 국가발전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내려앉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늘의 환경위기는 전지구적인 생존문제로 대두되기에 그 어느때보다 새로운 삶의 형태,의식과 가치관의 변혁,아니 문명사적 사고의 대전환과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립이 절실히 요청된다.이는 인간사이의 관계만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세계의 관계 인 세계 윤리,지구정의(Justitia terrae)를 찾는 것이다.참다운 진보와 발전은 인간이 더 넓은 사회적 연대성을 자각하고 자신을 자연세계에까지 개방하고 수용하는데 있지 않을까.경제발전과개발에 요청되는 가장 절실한 도덕적 준거는 무엇보다 지구자원과자연세계의 이용상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자연세계 안에는 우주라는 말의 서양어원(희랍어의 Cosmos.조화)이 일컫듯 오묘한 질서와 법칙이 존재하며,삼라만상은 서로 깊은 연대성으로 맺어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그러므로 인간이피조물 안에 새겨진 법칙과 사물의 본성에서 유래 하는 관계들을존중하는 것이 참으로 필요하다.아우구스티누스는 신법(神法)을 『자연질서를 존중하고 그 자연질서를 파괴하지 말도록 명하신 신(神)의 뜻,또는 그분의 정의』라고 했다.
「가난의 영성」을 철두철미하게 산아시시의 프란치스코는 모든 피조물을 형제처럼 대하고 존중했다.그는 『태양의 노래』라는 시(詩)에서 태양과 바람과 불을 「나의 형님」으로,달과 별과 물과 땅을 「나의 누님」으로 부르며 찬미했다.바로 우리들의 무한한 탐욕과 소유욕 때문에 범우주적 생태계 파괴의 와중에 휘말려든 오늘날,자유를 고대하는 피조물의 탄식과 신음소리를 감지할 수 있는 관조적인 시선과 마음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 아닐까.
具要備 신부.프라도사제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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