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I 리포트] '일자리 나누기'로 고용창출 할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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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정부는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두고 올해 노동정책을 펼치고 있다.

직업훈련 체계의 확충, 고용 서비스의 선진화, 사회 안전망의 확충 및 각종 노동 관련 규제 완화 등을 주내용으로 하면서 근로시간 단축, 교대제 전환으로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추가 고용 유도 등도 포함하고 있다.

'일자리 나누기'(업무 공유제.job sharing)는 그 개념부터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일자리 나누기와 대비되는 개념이 '일감 나누기'(시간 분할제.work-sharing)로서 이는 하나의 기업 안에 있는 근로자들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을 말한다. 해고 대신 노동시간을 줄임으로써 일감을 나누자는 의미다. 외환위기 때 해고 회피 노력의 일환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유지를 논할 때 사용되는 개념이 바로 이것이다.

이에 비해 일자리 나누기는 하나의 업무를 둘 이상의 단시간 업무로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복수의 업무로 나누어 노동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유지하거나 새 일자리를 만들려는 것이다.

일자리 나누기 정책을 채택한 나라 중에서 네덜란드와 독일은 기업 안에서 노사 간 교섭을 통해 근로시간 단축을 도입한 반면, 프랑스는 법률을 통해 근로시간을 감축했다.

2005년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 및 공무원에 주40시간제가 시행되는 우리나라에는 법정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 나누기를 시도한 프랑스의 사례가 시사하는 바 크다.

프랑스는 1996년 로비앙(loi de Robien)법에 따라 근로시간 감축을 통해 기존의 일자리를 보존하거나 새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에 상당한 금융 인센티브를 줬다.


또 98년에 제정된 오브리법(loi de Aubry)에 의해 2000년 초부터는 법정 근로시간이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축소됐다. 이 법안 덕에 종종 5일 가운데 4일만 노동하는 프랑스 근로자는 유럽에서 가장 행복하고 스트레스 없는 근로자로 불려 왔다.

오브리법의 고용창출 효과에 대해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한 연구인 '세테(Cette)와 타디(Taddi)' 보고서에 의하면, 주35시간제는 100만 명에서 120만 명에 이르는 고용효과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보고서는 근로시간 감축과 더불어 임금 완화가 수반되지 않는 경우와 수반되는 경우 사이에 고용효과 면에서 별다른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물가지수나 공공재정, 무역수지 등에 대한 효과에서만 다소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오브리법이나 '세테와 타디' 연구가 기대한 바와는 달리 주35시간 법제는 10%에 육박하는 프랑스의 실업률을 낮추는 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노동수요가 고정돼 일자리 나누기가 가능하다는 이들의 주장은 소위 노동총량 오류(a lump of labor fallacy)를 범하고 있다. 즉 노동비용이 상승하면 기업의 노동수요가 감소한다는 단순한 경제법칙을 간과했던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추가고용이 생기면 임금비용과 고정비용(훈련.채용비)이 늘어난다. 또 근로시간 단축 시 추가고용이 없을 경우에는 초과근로와 부가근로가 불가피해지고 이 경우 초과근무에 따른 할증비용이 증가하게 된다. 그 밖에도 근로시간이 줄어들지 않은 다른 근로자 집단에도 보상이 불가피해 간접비용도 증가하게 된다.

둘째, 이들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설비이용률이 떨어져 산출량이 줄어드는 것도 고려하지 못했다. 설비의 경직성과 불가분성으로 인해 노동시간 단축을 신규 채용으로 보전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10시간씩 2교대로 일하는 공장의 경우 1교대당 2시간씩 노동시간을 줄이더라도 근로시간 감소가 4시간에 불과해 새로운 세 번째 교대번을 만들기가 불가능하다. 그 결과 설비가동률과 산출량이 떨어지고 결국 고용수준이 줄어들게 된다는 얘기다. 셋째로 공평성의 문제도 발생했다. 저소득층은 여가시간을 활용할 만큼 소득이 높지 않아 근로시간 감축에 따라 생긴 여가를 누리는 게 고소득층에 집중된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1인당 근로시간이 지난 30년간 경쟁국보다 빠른 하락세를 보여 2003년에는 미국의 80% 수준에 머물게 됐고, 경쟁국인 독일에서 추가임금 없이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등 국가경쟁력 상실에 대한 우려도 늘어나고 있다.

프랑스 사례에서 보듯이 법정 근로시간 단축은 고용창출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것 같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프랑스보다 근로시간 감축이 일자리 창출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몇 가지 더 있다.

우선 연공서열적 임금제가 문제다. 총임금의 약 반을 차지하는 기본급의 대부분이 연공급적 성격을 띠고 있어 생산 동기를 유발하는 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약 30%를 점하는 여타 수당들은 반드시 공헌에 비례하지는 않는다.

연공서열에 따른 경직적 임금은 고용을 경직화해 근로시간 감축에 상응하는 임금감소를 기대하기 어렵게 해 새 일자리 창출을 어렵게 한다.

두 번째 요인은 임금의 포괄역산제도다. 일부 기업에서 중간관리직 및 전문직 사원에 대해 일률적으로 하루 몇 시간씩 초과근로를 한 것으로 간주해 장부상 잔업수당을 지급해 왔다. 포괄역산이라는 이 편법이 동원될 때 근로시간이나 소득에 실질적 변화가 없고 단지 장부상의 변화일 뿐이다.

셋째, 원하청이 보편화된 경제구조에서는 일자리 나누기로 인한 원청업체의 추가비용이 하청업체 근로자에게도 전가돼 근로조건의 양극화가 심화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일자리 나누기와 같은 변칙적인 정책으로는 고용창출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에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동의할 것으로 본다. 좋은 일자리 창출은 고용정보와 직업훈련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등 노동시장 수급의 기초여건을 개선해야 달성될 수 있는 정책목표다. 세계화 시대 속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조준모 숭실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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