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그림작가 버닝햄 부부 인터뷰] “어른이 되면 왜 상상력을 잃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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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살 어린이와 대화가 잘 통한다”는 존 버닝햄(좌 )과 부인 헬린 옥슨버리. [사진=이언 바틀릿]

▶ 『곰 사냥을 떠나자』에서 온가족이 집까지 쫓아온 곰을 피해 있는 모습(上)과『지각대장 존』의 주인공이 지각을 한 뒤 선생님 앞에 서 있는 장면(하).

존 버닝햄(66)은 한국 어린이에게 가장 인기 있는 그림책 작가 중 한 명이다. 13만부 이상 팔린 『지각대장 존』(비룡소)을 비롯해 『알도』(시공주니어),『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등 번역본 10여권의 판매 부수가 1백만을 넘는다. 『빅마마, 세상을 만들다』(비룡소),『곰 사냥을 떠나자』(시공주니어)등의 그림책으로 널리 알려진 그의 부인 헬린 옥슨버리(65) 역시 우리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작가다.

지난달 13일 영국 런던에서 버닝햄 부부를 만났다. 예술가와 연예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런던 햄스테드 지역에 있는 부부의 집에는 중국·일본 등에서 건너온 고가구가 많았다.
버닝햄은 그의 책에 나타나는 재치 있고 핵심을 찌르는 말 솜씨를 그대로 보여줬다. 그는 “정신적으로 다섯살 때 성장을 멈췄다”며 “아홉살 열살 아이들보다는 다섯살 아이들과 의사 소통이 잘 된다”고 말했다.

옥슨버리 역시 자신의 그림들처럼 밝고 유쾌하면서도 사려 깊은 분위기를 풍겼다. “글을 보면 본능적으로 어떤 그림이 거기에 맞는지가 떠오른다”는 그녀는 인터뷰 도중 버닝햄이 대답을 머뭇거리면 “서머힐 교육이 문제”라는 등 짤막한 말로 웃음을 자아냈다. 버닝햄은 ‘학생들이 참여하고 싶은 수업에만 출석하는 자유학교’서머힐 출신이다.

다음은 버닝햄 부부와의 일문일답.

-한국에서 인기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버닝햄)“인기가 있다면, 나에게는 큰 힘이된다. 내가 그리는 그림에는 영국이나 유럽의 풍경이 늘 등장하는데 한국의 어린이들이 좋아한다면 그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언어와 지역을 초월해서 나와 의사 소통을 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최근 한국에서『빅마마…』가 번역돼 나왔고, 독자들의 반응도 좋은데.

(옥슨버리) “정말? 어려운 이야기라서 영국에서도 책이 많이 팔리지 않았는데…. 창조 신화의 주인공이 다 남자라서 여자를 창조신으로 그렸더니 사람들이 그 아이디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한국에는 곰이 사람으로 변하는 신화가 있다고 소개했더니 옥슨버리가 눈을 크게 뜨며 “훌륭한 그림책 소재”라고 말했다.)

-(버닝햄에게)서머힐을 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버)“부모가 보내서 갔다. 나의 선택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새로운 교육 방법을 시도하는 학교마다 보내서 10개 학교를 다녔다. 내가 보통 학교에서 말썽을 부려 그곳으로 보내진 게 아니었다. 문제가 있었다면 학교를 너무 자주 옮겨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머힐 생활은 행복했다.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릴수 있었다.”

(옥)“나는 남편이 문제아가 아니었다는 말을 못 믿겠다.(웃음) 우연히도 나는 서머힐에서 불과 몇㎞떨어진 고등학교를 다녔다. 학창 생활은 끔찍했다. 나는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들도 나를 안 좋아했다. ”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나.

(옥)“‘센트럴 스쿨 오브 아트’라는 학교에서 만났다. 나는 무대 디자인 공부를 했고, 남편은 그래픽과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그때 눈이 맞았고 3년 뒤 결혼했다. 결혼 뒤 나는 아이들을 돌봐야했기 때문에 집에서 그림책 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왜 함께 책을 만들지는 않나.

(옥)“우리는 서로 일하는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 남편은 이 집 1층에 있는 작업실에서 일하고 나는 여기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작업한다. 서로의 작품에 대해 비평을 하는데 아주 신랄할 때도 있다. 물론 나는 남편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생각하도록 한다. 요즘 남편은 그림 그리기보다 이야기 구상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림 그리기가 좋다. 멀지 않은 미래에 남편이 글을 쓰고 내가 그림을 그린 첫번째 책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버닝햄에게) 평소 정신 연령이 다섯살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다섯 살 정도의 아이들과 대화가 가장 잘 된다는 뜻이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자연스럽게 그런 능력이 생긴 것 같다. 이러다 정신 연령이 다섯살이어서 서머힐에 보내졌다고 소문나겠다.”

-(버닝햄에게) 그림책 작가가 되기 전에 여러 가지 일을 했다고 들었다.

“열여덟 때 양심적 병역거부를 해 2년 반 동안 다양한 일을 했다. 공공근로로 농사일·병원의 허드렛일·벌목 작업 등을 했다. 그 일들을 하면서 세상을 많이 배워 이후 40여년 동안 그림 그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동안 책을 얼마나 냈나.

(옥)“1백권 이상의 책에 그림을 그린 것 같다.”

(버)“80권은 넘는 것 같은데 없는 책이 많아 정확히 셀 수가 없다. 생일 선물 등으로 책을 주고 나면 나중에는 원본은 하나도 없고 스웨덴어 등으로 번역된 것만 남는 일이 허다하다.”

-『지각대장 존』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이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 인데, 왜 이런 특이한 이름을 썼나.

(버)“죄를 짓고 법정에 서면 ‘존 매킨토시 버닝햄’ 식으로 ‘풀네임’으로 불린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을 꾸짖는 것이 법정에서 죄인을 다루는 것이 연상되도록 풍자한 것이다.”

-전세계에 어린이 팬이 많을텐데.

(버)“내 책의 주요 독자들은 아직 편지를 쓰거나 e-메일을 보내지 못한다. 부모가 편지를 보내는 일은 많이 있다. 어린이들이 내 책을 좋아한다면 아마도 내가 자신들 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그의 책에는 어린이 말을 귀담아 안듣거나, 어린이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다 일을 그르치는 어른이 자주 등장한다.)

-요즘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버) ”어른이 어렸을 때를 회고하는 책을 만들고 있다. 어른이 읽을 책이다. 한국에서도 곧 출판될 것으로 안다. (옥)“새로 편집하는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삽화를 그리고 있다.”

-왜 남편 성(姓)을 따르지 않나.

(옥) “같은 직업에 종사해 헷갈릴 일이 많을 것 같아 성을 따로 쓰기로 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남편을 ‘미스터 옥슨버리’라고 부른다. 남편은 그 소리 듣기를 제일 싫어한다.”

-어린이들은 당신들의 책을 금세 이해하는데 어른들은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버)“가끔 그런 소리를 듣는다. 책에다가 어른을 위한 해설이라도 붙여야 되겠다.”

(옥)“어른이 되면서 상상력을 잃어서 그런 것 같다. 어린이들은 뇌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감성으로 이야기를 이해한다.”
인터뷰 내내 점박이 강아지가 주변을 맴돌았다.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떠돌이 개 심프가 우연히 서커스단의 대포 안에 들어갔다가 멀리 발사되는 바람에 인기 스타가 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버닝햄의 책 『대포알 심프』가 떠올랐다. 버닝햄은 “심프는 예전에 키우던 검정개를 모델로 한 것이며, 지금 키우고 있는 점박이‘알푀’는 축구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언젠가 축구하는‘알푀’를 그림책에서 만날 것 같다.

런던=이상언 기자

*** 존 버닝햄과 헬린 옥슨버리

존 버닝햄(John Burningham)은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찰스 키핑과 더불어 영국 3대 그림책 작가로 꼽힌다. 첫 작품인 『깃털없는 기러기 보르카』(비룡소)로 1964년 영국 그림책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받은 뒤 1970년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시공주니어)로 같은 상을 다시 받았다. 초기에는 유화풍의 그림을 주로 그렸으나, 요즘은 자유로운 선과 흐린 색의 그림을 즐겨 그린다. 국내에서는 『지각대장 존』이 가장 인기가 있으며 『우리 할아버지』『내 친구 커트니』『셜리야 물가에 가지마라』등 10여권의 그림책이 한국어로 번역돼 있다.
그의 부인 헬린 옥슨버리(Helen Oxenbury)역시 1970년『쾅글왕글의 모자』(보림)의 그림으로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빅마마, 세상을 만들다』로 보스튼 글로브 혼 북 상에 뽑혔다. 『난 할 수 있어』(비룡소) 시리즈는 유아용 그림책의 고전이 됐으며, 『 곰 사냥을 떠나자』은 국내에서 수십만부가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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