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라운지] 대사관 사연 훑어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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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의 위치를 보면 주재국에서 해당 국가가 차지하는 위상을 알 수 있다. 서울 세종로에 있는 미국대사관의 경우 청와대와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다. 맞은편엔 정부 중앙청사와 외교부가 있다. 중.일.러 3국 대사관도 정부청사 주변이다. 주요국 대사관 건물에 얽힌 이야기를 모았다.

미 대사관은 한국전쟁 직후 현재의 서울시청 별관 건물에 입주했다가 1960년대 초 현위치로 옮겼다. 부지는 한국 정부가 제공했다. 부지 임대료 문제로 갈등이 불거지자 90년 서울시와 미 대사관은 새 대사관을 짓기 위한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대사관 측이 송현동 토지와 서울시청 별관 건물을 내놓는 대신 서울시는 옛 경기여고 부지를 제공했다.

일본대사관은 65년 수교 이후 지금까지 줄곧 중학동 한국일보 옆 건물을 쓰고 있다. 한반도 주변국 대사관 중 가장 좁고 볼품도 없다. 정문은 골목길로 나 있고, 건물 내부도 옹색하다. 65년 당시 높은 반일(反日)감정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넓은 곳을 택할 경우 테러를 당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했다.

중국대사관 터는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청군의 주둔지였다. 한국전쟁 이후 대만대사관이 차지했으나 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대사관으로 바뀌었다. 한.중 간 교류가 폭증하면서 중국 정부는 대사관을 헐고 고층 건물을 짓기로 결정했다. 2002년 5월부터 효자동의 4층 건물을 임시 대사관으로 쓰고 있다.

미국대사관은 옛 경기여고 자리에 15층 규모로 대사관과 직원숙소를 짓기로 결정하고 세계적인 건축가인 마이클 그레이브즈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그러나 부지가 문화유적 보호지여서 문화재 관리법에 발목이 잡혔다.

일본대사관도 한국민의 반일감정이 엷어진 데다 양국 간 교류가 늘어 대사관을 신축할 계획이다. 새 대사관 터를 물색 중이나 "소박하게 짓는다는 원칙은 예전과 다름없다"고 한 관계자가 말했다.

중국대사관은 당초 고층건물을 짓기로 했다가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틀었다. 중국대사관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가 행정수도 이전안을 내놓은 이후 새 대사관은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 행정수도에 대한 확실한 안이 나오면 결정하자는 게 중국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미국대사관은 2중 보안이다. 외곽 경비는 한국 경찰에 맡긴다. 그러나 외국 경비회사가 내외 경비를 담당한다. 유사시에 대비해 미 해병대원 10명도 건물 안을 지킨다. 미 대사관의 담장 모퉁이 네곳에는 가로등이 서 있다. 야간에도 전방 50m까지 감시할 수 있는 원격조종 카메라다. 옛 경기여고 부지는 최근 보안가치가 떨어졌다. 주변 세곳에서 20층 이상의 건물이 신축 중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미 대사관은 은밀하게 새 대사관 부지를 알아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대사관은 2001년 9월 30일 삼성물산을 통해 골조공사를 끝냈다. 그러나 공사 내내 보안담당관이 상근하면서 시멘트 섞는 것까지 감시했다. 9월 30일 이후에는 러시아 기술자들이 내부 마감공사를 맡았다. 이때에도 보안요원 10명이 모든 건축 자재를 샅샅이 검색했다. 도청장치가 숨겨져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복사기가 고장 나도 기술자를 대사관 안으로 부르지 않고 밖으로 운반해 철저한 보안 속에 수리한 뒤 다시 반입할 정도로 러시아대사관의 보안의식은 투철하다.

오영환.윤혜신 기자, 최영재 월간중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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