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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려도 따뜻한 무궁화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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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어쩌다 보니 조치원까지 강의를 나가게 되었다. 차를 가져가기에는 부담스럽고 버스를 타자니 터미널까지 가는 일이 번거로워 기차를 타기로 했다. 조치원은 KTX가 서지 않는다. 뜸하게 있는 새마을호는 시간이 맞지않아 선택의 여지없이 무궁화호를 타야 했다. KTX로 간다면 대전까지도 한 시간이면 가는데, 대전보다 가까운 조치원을 가는 데 한 시간 반이 걸린다니 어쩐지 손해보는 기분이었다. 십 분이 아쉬운 아침 단잠을 연장시키는 건 물론이고, 아침밥 먹고 커피 한잔을 할 수도 있을 시간인데…. 이것이 첫 강의를 나가던 날의 심정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교정은 어쩐 일인지 텅 비어 있었다. 모두들 같은 시간에 수업에 들어간 걸까? 그래서 아무도 없는 걸까? 아니면 학교 자체가 워낙 조용하고 침착한 분위기인가? 물론 아니다. 교정이 비었던 것은 아직 개강을 하지 않았기 때문. KTX도 아니고 새마을호도 아닌 무궁화호를 타고 갔는데. 버스 갈아 타고 기차 타고 택시 타고 근 세시간 만에 도착한 학교인데. 쑥스럽고 부끄럽고 허망했다. 제가 잘못 알고 부산 떨며 달려간 것이니 남 탓할 수도 없는 일. 그래도 억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다시 기차를 탔다. 부산발 서울행 무궁화호. 객차 안은 후덥지근했다. 부산에서부터 조치원까지 달려왔으니 사람들이 내뿜는 숨과 체온만으로도 충분히 그럴 만했다. 닫힌 공간에서 날 법한 퀴퀴한 냄새가 후덥지근한 공기를 더욱 숨막히게 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억울하고 머쓱해서 어디라도 숨어 들어가고 싶은데, 빈자리 하나 없이 가득 메운 사람들이며 냄새라니. 이것 참. 억울함의 연속인 날이었다.

널찍하게 다리를 벌리고 앉은 옆자리 할아버지는 맥주 캔과 삶은 달걀을 각각 손에 나눠 든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코고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으면, 어느새 소스라치며 깨어나 맥주를 마셨다. 입을 쩝쩝 다시면서 맛있게도 자셨다. 그리고 나선 꼭 시원하게 트림 한 번을 곁들였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허탕치러 조치원까지 내려갔다 오는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한 탓이었다. 처자도 한번 먹어보라고 달걀을 내밀면 염치 불구하고 덥석 받아들 텐데, 할아버지는 아무래도 그럴 생각이 없으신 모양이었다. 자꾸 침이 고여 통로 쪽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건너편 자리에는 애 엄마가 아기 기저귀를 갈고 있었다. 똥 냄새가 훅 끼쳐왔다. 기저귀를 되채우고 나니 이번엔 우유를 토해내고, 애 엄마는 기저귀를 정리하느라 아이를 닦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앞자리에는 할머니 두 분이 마주보고 앉아 화투를 치고 있었다. 100원짜리가 오가는 화투에 신경전도 여간 깊은 게 아닌 듯 싶었다. 뒤를 돌아보니 셔츠를 훌러덩 벗고 러닝셔츠 차림의 할아버지가 아예 두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 주무시고 계신 게 보였다. 벗어놓은 백구두 속에는 둘둘 말린 청색 양말이 들어 있었다.

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기분이 들었다. 어릴 적 외할머니 댁에 다녀오던 여수발 통일호 열차. 오라비 손을 꼭 잡고 애써 똘망똘망한 척 하던 때. 그리고 여전히 순천에서부터 서울까지 무궁화호를 타고 올라오시는 외할머니도 생각이 났다. 할머니는 무궁화호만 고집했다. KTX는 물론이고 새마을호도 못 타시겠단다. 너무 빨라 멀미가 나기 때문이란다. 그러면 특실이라도 타시라고 하니 무궁화호엔 특실이 없을 뿐더러, 간혹 특실이 있는 열차도 있지만 경로우대가 안 된단다.

그때 차창 밖으로 오후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생생하게. 풍경 하나하나에 시선을 주며 상념에 빠지기 딱 좋은 속도였다. 누군가는 여행지를 살펴보기에 딱 좋은 속도는 달리는 속도라서 꼭 달리기를 해본다고 했던가. 오후의 무궁화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나는 더 이상 억울하지 않았다. 그냥 비실비실 웃음이 나오는 기분 좋아지는 속도. 바깥 풍경과 안쪽 풍경이 딱 맞게 어우러지는 속도. 나는 그날 무궁화호의 속도로 따뜻해졌다.

천운영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