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4번째 출사표 아소 지지 파벌 갈라져 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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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1일 도쿄에서 인파가 북적대기로 유명한 시부야(渋谷) 광장.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선 후보 다섯 명이 빗방울을 맞아 가면서 “내가 자민당 총재감”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가 자진 사퇴를 선언함에 따라 22일 총재 선거를 치르는 자민당이 시가 유세를 시작한 것이다.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당 소속 의원 387명과 47개 지부연합회 대표 141명 등 총 528명의 투표로 결정된다.

이번 선거에는 역대 최다인 다섯 명의 후보가 입후보했다. 가장 유력한 총재감으로 꼽히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간사장에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전 방위상, 요사노 가오루(與謝野馨) 재정경제상,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 전 국토교통상,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방위상 등이다. 모두 자민당 내 8개 파벌에 각각 속해 있다. 그래서 여전히 짙게 남아 있는 자민당 파벌 정치가 그대로 풀풀 풍겨 나온다.

지금까지는 최대 파벌에서 내세운 후보가 총재로 당선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지난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전격 사퇴하자, 기세 좋게 출사표를 던졌던 아소 간사장이 후쿠다 총리에게 패배한 것도 파벌 정치의 매운맛 때문이었다. 당시 16명(현재 20명)의 군소 파벌인 아소파를 이끌던 아소 간사장은 총리에 세 번째 도전하면서 자민당 총재 선거는 통과의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대 파벌인 마치무라(町村, 88명)파의 실질적 보스인 모리 요시로(森嘉朗) 전 총리는 외국 출장길에서 급히 귀국해 총재 선거를 지휘했다. 그러곤 자파 출신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와 현 회장인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당시 외무상(현 관방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차기 자민당 총재는 후쿠다로 결정하자”고 ‘교통 정리’를 했다.

아소파의 한 의원은 “파벌 때문에 아소 간사장은 칼도 못 뽑고 쓰러졌다”고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를 회고했다. 아소는 이때부터 ‘4수’를 준비했다. 방법은 명확했다. 아소는 고향인 규슈(九州) 지방의 맹주 자리를 놓고 갈등해 온 고가(古賀)파의 고가 마코토 선거대책위원장과 화해하는 등 파벌 수장들에 대한 유화책에 나섰다. 이런 노력 덕분에 이번 총재 선거에선 소속 의원 전원이 아소 반대 입장을 취하는 파벌은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파벌 정치의 메커니즘 때문에 새로운 복병이 나타났다. 아소는 모리 전 총리로부터 “이번엔 당신 차례야”라고 확약까지 받았지만, 마치무라파의 새로운 실력자인 나카가와 히데나오(中川秀直) 전 간사장이 반 아소 깃발을 들고 나왔다. 여성 앵커 출신의 고이케 전 방위상을 추천한 것이다. 결국 최대 파벌 마치무라파는 모리 전 총리가 지원하는 아소 지지파와 나카가와 전 간사장이 지지하는 고이케 지지파로 분열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사실 고이케는 마치무라파 소속이다. 그러나 모리 전 총리는 아직 지명도가 낮은 고이케로는 이르면 다음달 실시되는 총선에서 자민당이 승리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아소를 지지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선 아소가 승리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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