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비자 '억울한 거부' 많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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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차관급 고위공무원을 지냈으며 현재는 유수 기업체 사장의 부인P씨(40대 후반)는 최근 미국에 유학가려다가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젊은 시절 못다한 화가의 꿈을 이루고자 미국의 한 유명 미술대학에 지원해 입학허가를 받았으나 미대사관측이 비자발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P씨가 미국에 눌러앉을 가능성이 있다는게대사관측의 거부 이유.남편 신분이 확실하고 가족들이 모 두 자신과 동행하지 않고 서울에 그대로 남는다는 점을 누누이 설명했지만 비자발급을 심사하는 미대사관 영사는 『도대체 왜 유학을 가려느냐』며 막무가내로 묵살했다.분통이 터졌지만 유학을 포기할수 없었던 P씨는 비공식 통로를 통해 미대 사관측에 자신의 유학동기를 설명하고 남편의 신분을 밝히는 힘겨운 과정을 거치고서야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40대 이혼녀 B씨는 초등학생인 두 아들에게 미국 구경을 시켜줄 요량으로 지난 5월 모여행사를 통해관광비자를 신청했지만 두번이나 비자발급이 거부됐다.그녀 역시 미국 불법체류 가능성 조항에 걸렸다.그녀는 연간 매상만 4억원에 이르는 대형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여사장으로 꽤 소문난 재력가다. 『기가 막히네요.내가 왜 미국가서 살아요.음식점은 누가운영하라고요.돈주고 살라고 해도 안살아요.』정나미가 뚝떨어진 B씨는 미국여행 계획을 아예 포기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고,미국에서 되돌아오는 역(逆)이민만 한해 5천명이 넘지만 미대사관의 한국인에 대한 비자발급 심사기준은 요지부동이다.불법체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 싶으면 가차없이 비자발급을 거부하는 것이다.
〈관 계기사 3면〉 ***[ 1면 『급 심사기준은 요지부동이다.너무 엄격하고 경직된데다 P씨와 B씨처럼 납득할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관계기사 3면> 주한 미대사관측은 지난해 접수된 40만건의비자 신청건수 가운데 약 3만건을 거부,비자거부율이 약 7 %에 달했다고 밝히고 있다.거부이유는 불법체류할 가능성이 있거나필요한 서류를 제대로 갖추지 않았을 경우등이다.
***[ 1면 『미국비자』서 계속 ] 서류미비에 의한 거부 역시 상당한 정도 미대사관측에 책임이 있다.미대사관의 비자발급담당영사는 올들어 2명이 증원된 13명.이들이 처리해야 하는 비자 발급건수는 하루 4천5백~5천건에 달한다.손이 턱없이 모자라다 보니 꼼꼼히 챙기 지 못할 뿐더러 서류요건이 조금만 틀려도 기계적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연극인 C씨.다섯차례나 미국 공연을 다녀온 그도 지난달 비자발급이 거부돼 애를 먹었다.이유는 새로 발급받은 여권에 구여권을 첨부하지 않았다는게 전부다.『컴퓨터만 잠시 두드려봐도 알 수 있을 텐데 너무 무성의하다』고 C씨는 분해했다 .
비자 심사기준이 개선되지 않고 구조적으로 한계상황에 처해있는발급체제 때문에 「억울한 비자거부 사례」가 양산되는 것이다.
한편 이같은 문제들을 푸는 방법은 비자면제를 하루빨리 실시하는 것 뿐이라는 견해가 미국인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주한 미상공회의소(회장 조지 윌리엄스)는 올들어 상용이나 관광비자에 대한 한국인의 비자면제를 최우선 과제로 정하고 지난 5월 대표단을 워싱턴에 파견,의회와 행정부를 상대로 적극적인 로비활동을 벌였다.
또 미 상.하원에는 한국인에 대한 비자면제 추진법안이 이미 제출돼 있다.한국계 하원의원(캘리포니아 다이아몬드시)인 김창준(金昌準)의원과 대니얼 이누이 상원의원(하와이)이 지난 5월과3월 각각 한국인 단기방문객에 대한 비자면제 법 안을 상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배명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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