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사람>정년퇴직한 서울大 규장각 터줏대감 이상은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한평생을 고서(古書)전문 사서(司書)로 보낸 서울대 규장각의「터줏대감」이 정년을 맞았다.
3일 정년퇴직한 서울대 규장각 전도서관리실장 李相殷(61)씨가 규장각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세이던 54년.심부름꾼으로 일하다 58년부터 정식 사서로 임용돼 42년간 고서를 지켜왔다. 6.25직후 서울동숭동 문리대도서관에 방치되다시피 쌓여있던고서를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한 李씨는 74년 조성된 서울대 관악캠퍼스 중앙도서관으로,90년 신축된 규장각 건물로 옮겨진 고서들을 따라다니며 이를 분류.정리하는 작업에 평생 을 바쳤다.
李씨는 『동숭동 시절에는 국학 관련자료를 구하려면 종이를 끼워 손으로 흔들어주는 수동 복사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한다.
한국경제사의 권위자인 서울대 경제학부 安秉直교수는 『대학원생이던 60년대 초반 자료를 찾아주던 李씨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한데 벌써 30여년이 흘렀다』면서 『외국의 경우처럼 전문 사서로 발돋움해 자신의 경험을 후임자에게 물려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李씨는 40여년간의 근무기간중 90년 9월11일을 잊을 수 없다.새로 지은 규장각 건물의 개관식 날 침수로 봉천동 집에 보관해오던 3천4백여권의 역사책들을 잃어버렸기 때문.
웬만한 논문은 제목만 봐도 필요한 도서를 줄줄 늘어놓을 정도의 경지에 이른 李씨는 87년 주요 기관에서 소장중인 한국학 관련 고서들의 목록을 총망라한 3권분량의 「고서목록」을 펴내기도 했다.65년 중앙일보 창간 당시 규장각을 뒤져 「中央日報」넉자를 집자해주기도 한 李씨는 그간의 공적을 인정받아 정년퇴직하면서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
김창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