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한 노년은 싫어…공동작업장 가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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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등촌동 강서노인복지관 노인공동작업장은 수의 일감으로 분주하다. [김태성 기자]

"일도 하고 친구도 사귀고…. 내 힘으로 용돈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金길선(79.서울 강서구 둔춘동)할머니는 요즘 아침마다 출근 준비에 바쁘다. 지난해부터 金할머니가 나가고 있는 '직장'은 인근 강서노인종합복지관 지하에 마련된 노인공동작업장. 오전 9시 "드르륵 드르륵" 재봉틀 소리가 새어나오는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20여평의 공간에 70~80대 노인 5~6명이 모여앉아 바느질에 여념이 없다. 돋보기를 꺼내 쓴 金씨도 재봉틀 앞에 자리를 잡고 익숙한 솜씨로 삼베 저고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金씨를 비롯해 노인 10명은 '수의(壽衣)제작팀'이다.

작업장 한쪽에서는 할아버지 4~5명이 머리를 맞대고 중고 비디오와 선풍기에 새 부품을 갈아끼우느라 바쁜 모습이다. '중고가전 수리팀'의 팀장인 백채기(72)할아버지는 "인근 식당가에서 사용하는 TV와 냉장고는 모두 우리가 수리한 제품"이라고 자랑했다. 수리 기술 교육은 30년 이상 가전제품 수리를 한 경력이 있는 백씨가 맡고 일주일에 두세차례 팀원 전원이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컴퓨터 AS 교육도 받는다.

이 같은 노인 공동작업장은 사실상 재취업이 어려운 70세 전후 고령자들이 모여 간단한 생산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전국 각 지역 복지관이나 경로당별로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으며 서울시내에만 30~40여곳이 있다. 경기 침체로 일자리가 줄어든 데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알선하는 노인 재취업 연령도 65세 이하가 대부분이어서 70대 노인들이 부담없이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일터인 셈이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멀리 갈 필요 없이 편안하게 일할 수 있고 또래 노인들과 어울려 친목을 다질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일거리는 주로 상자 접기, 쇼핑백 만들기, 빨래, 전기부품 조립 등 비교적 단순한 작업이지만 노인들이 소일거리 삼아 일하고 용돈을 벌기에 손색이 없다. 노인 한명의 월평균 소득은 20만원선.

불량품 하나 찾기 힘들 정도로 노인들의 작업이 꼼꼼해 주문업체들의 반응도 좋다. 강서노인종합복지관 이기민 과장은 "품질이 좋다며 인근 병원.장의사에서 주문이 쇄도해 윤달이 끼인 지난달 총수입이 2000만원 가까이 됐다"고 귀띔했다.

봉천동 관악노인공동작업장에서 2년째 전구부품조립, 문구류 포장 등을 하고 있는 최금순(73)할머니는 "한달에 15만원쯤 버는 돈으로 손자 용돈도 주고 교회에 헌금도 하지"라며 "젊은 사람들도 취직하기 어려운 세상에 작지만 내 일이 있다는 게 어디야"라며 활짝 웃었다. 각 구청 사회복지과나 동사무소.사회복지관 등에 문의하면 가까운 노인공동작업장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신은진 기자<nadie@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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