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시화湖 '날치기 방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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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달 29일 밤과 30일 오전 두 차례에 걸쳐 「날치기」로이뤄진 시화호의 썩은 물 방류는 우리의 환경문제 인식과 대처수준등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당국의 주장대로 장마철 수면상승에 따른 방류의 불가피성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하더라도 철저한 사전조사를 통해 환경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빗발치는 여론에 귀를 닫고 방류를 강행한 강심장이 놀라울 뿐이다.
수자원공사는 이에 앞서 지난 5월10일에서 12일 사이 비밀방류를 한 뒤 바다오염상황을 조사해 방출된 물이 바다물과 잘 섞이지 않은 채 갑문에서 2~3㎞까지 퍼져 있음을 확인하고도 이번에 또 방류를 했기 때문이다.
시화호 방류결정과 실행과정을 살펴보면 관련당국의 판단잘못과 정책이기주의,손발이 안 맞는 부처협조등 허술한 곳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특히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 방류량과 시기를 결정하겠다는 공언을 깨고 방류를 강행해 정부의 도덕성까 지 훼손한 셈이다. 시화호 방류의 직접 당사자인 수자원공사의 거짓말은 수위가 높다.
이태형(李泰衡)수자원공사사장은 지난달 28일 환경부를 방문해기자들에게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해 시화호 방류는 불가피하다』며 『그러나 수자원공사의 명예를 걸고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밝혔다.완벽한 사전대비를 거쳐 물 을 빼내려는 것으로 이해됐다.
李사장은 또 『상류침수등 극단적이고 긴급한 상황 이외에는 방류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그러나 이러한 「약속」은 불과 하루만에 식언(食言)이 됐다.
이번 방류는 호우주의보를 이유로 하고 있다.하지만 호우주의보는 방류전인 29일 오후5시30분 이미 해제됐고 이날 내린 비도 40㎜ 미만이어서 자신들이 약속한 방류조건을 스스로 깬 꼴이 됐다.
물론 여기에는 수질관리를 책임진 환경부의 무원칙하고 안이한 대처가 일조를 했다.
환경부는 『1차 방류가 진행중이던 29일 밤늦게야 방류사실을사후보고받았다』고 변명하고 있다.그러나 당초 환경부가 「시험방류」를 명목으로 사실상 수자원공사의 방류를 허용한데다 그동안 『적어도 방류 하루 전에는 환경부와 ■의하기로 했다』고 밝혀 온 약속을 상기하면 환경부의 묵계 아래 방류가 이뤄졌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이에 따라 방류 경위에서의 책임소재 규명과 함께 이번에 방류된 3천1백만의 시화호물이 해안 생태계에 어떠한 피해를 주는지에 대한 사후조사가 뒤따라야 한다.이것이 지난3월 대통령이 발표한 「환경복지구상」중 첫번째 원칙인 「정부수범의 원칙」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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