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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캔터 訪韓을 보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미키 캔터 미(美)상무장관이 서울을 다녀갔다.지난 3년동안 클린턴행정부의 통상대표로 재직하면서 미국의 무역상대국에 시장개방압력을 행사하는 일에 앞장섰던 통상외교의 베테랑답게 그는 이번 방한중에도 한국정부에 각종 시장개방을 요구하고 돌아갔다.특히 캔터는 건설과 통신시장 개방을 촉구하면서 자동차시장에 대해서도 한국정부의 행동에 불만을 표시했고 미국기업의 지적재산권 보호를 요구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캔터는 미 대사관저에서 있었던 미국산 자동차쇼에나타나 자동차 세일즈에 가담하는가 하면 민간업체인 신세기통신을방문,미국 통신장비 구입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처럼 적극적인 미국 상무장관의 활동에 대해 한국 국민은 한편으론 존경심을 느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의문을 갖게 된다.존경심은 미국경제의 이익을 위해 뛰는 그의 철저한 프로정신과 자세에 대한 것이고,의문은 한.미간 무역에서 한국의 적자가 계속늘어나고 있는데 어떻게 미국 상무장관은 한국시장 개방만 요구할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앞으로는 우리나라 정부지도자들도 한국 제품을 홍보하는데 더욱적극적이었으면 한다.우리는 관(官)과 민(民),공(公)과 사(私)의 구별을 잘못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 것같다.마치 정부에 있는 사람이 민간기업의 제품을 홍보하는 것은 정 부의 공평성(公平性)을 어기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같다.그러나 개인의 이득없이 국제시장에서 자국의 민간기업을 돕는 행위는 공평성을 위협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적극 권장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적자가 분명한데도 미국은 무슨 생각으로 우리에게 시장개방을 계속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미국 정부관리들은 실제 무역수지보다 교역조건의 형평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이다.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선명한 것은 아니 다.캔터 자신도 일본에 대해 교역의 조건과 상관없이 교역의 결과를 보장하라고 요구한바 있다.
미국은 대외정책보다 국내정치가 우선하는 나라다.그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하여튼 미국의 통상정책은 국내정치를 떠나선 이해할 수 없다.우선 캔터라는 사람 자신이 국내적 인물이다.그는경제나 통상전문가도 아니며 국제관계 전문가는 더 욱 아니다.원래 미국의 지방 변호사로 할리우드 연예인들의 민사(民事)관계 일을 돌봐준 배경 때문에 클린턴 대통령 선거운동을 위해 연예인들을 동원하는 공헌을 세운 덕분으로 무역대표에 임명됐다고 한다. 무역대표로 있으면서 캔터는 클린턴 재선을 위해선 일본에 통상압력을 가하는 제스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한동안 대일(對日)무역전쟁이라도 할듯 공세적 태도를 연출했다.따라서 올 가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캔터가 서울에서 시장개방을 촉구 한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다.
필자는 한국의 대미(對美)흑자가 가장 컸던 시절 워싱턴에 근무한 적이 있다.당시 미국은 툭하면 301조를 운운하면서 한국의 보험.담배.쇠고기.농산물등의 시장개방을 요구했고,특히 저작권.특허권등을 둘러싼 강압적 협상을 강요했다.그런 데 미국이 시장개방을 요구하는 품목들은 미국의 「국가이익」이라는 어떤 객관적 개념이나 기준에 의해 정부가 주도적으로 선정한 것이 아니고 각종 이익단체들과 기업들의 대정부 로비 결과로 선정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그러니까 미국의 통상외교는 그들의 국내사정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원화절상(切上)을 요구했는데 한국 정부는 경제논리를 설명하면서 적정 환율을 제시했지만 당시 미국 재무장관 제임스 베이커는 우리의 경제논리에는 관심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해도 하지 못하는 인상이었다.역시 베이커 장관도 경제는 잘 모르는 변호사였다.
통상외교는 경제 세미나가 아니다.힘겨루기다.국내에서는 산업간.기업간의 힘겨루기가 된다.
우리는 우선 통상외교에서 우리의 힘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부터 갖춰야 한다.캔터는 여러 부처 장관을 개별적으로 만났다.이제부터는 우리의 통상외교를 한데 묶어 협상하는 방법을 생각해봐야 한다.받아들일 수 있는 요구 와 끝까지 「노」해야 하는 요구를 통합적으로 교섭함으로써 힘겨루기 통상외교에서 우리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체제를 갖춰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김경원 사회과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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