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공직자 골프 自制令 私생활 침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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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공직자에게 골프치지 말라 한적 없다」「세계화를 표방하면서 개인여가를 제한해서야 되느냐」는 논란이 판사 골프자제령과 검사의 골프및 해외여행 자제령을 계기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과연 골프는 사치성 운동이고 부패와 담합의 온상인가,그 렇지 않으면골프도 얼마든지 건전한 스포츠로 육성 가능한가.공직자 골프금지가 다시 강화되는 것을 둘러싼 서로 다른 견해를 들어본다.
스포츠 가운데 골프처럼 묘한 것도 없을성 싶다.내가 구태여 묘하다고 하는 까닭은 두가지 점에서다.첫째는 골프가 묘하게도 재미있는 운동이라는 점이고,둘째는 골프가 묘하게도 사회적으로 잘못된 상황인식의 분위기에 휘말리고 있다는 점이다 .
스포츠의 장르를 술(術)의 세계와 도(道)의 세계로 나눈다면골프는 술과 도를 함께하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대개의 스포츠가 힘과 기(技)로써 충족되는데 비해 골프는 힘이나 기보다는정신적 차원이 더욱 중요한 몫을 차지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골프는 힘을 쓰거나 기를 앞세워서는 한계에 부닥치게 마련이고 목과 어깨에서 힘을 빼고 올바른 마음자리로 운동할 때에만 비로소 잘 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된다.골프가 술과 도를 함께하는운동이라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골프와 관련된 국내외의 수많은 책들을 읽어본 입장에서 말한다면 골프와 지도자(指導者)의 길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게하나의 결론이다.골프는 원리와 원칙을 지키고 겸허한 자세로 어깨에서 힘을 빼야만 한다는 지도자의 덕목을 일깨 워 주고 있다.뿐만 아니라 골프는 다른 모든 스포츠가 심판이 있는데 비해 심판이 없고 스스로가 채점하는 유일한 운동이다.게다가 골프는 대개의 스포츠가 상대방을 공격하는데 반해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고 환경에 적응해서 자기와 싸우는 운 동인 것이다.
이런 골프의 조건은 지도자가 지녀야 할 올바른 자세를 교훈적으로 깨우쳐 주기에 부족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물론 상대방을공격하지 않는 운동은 골프만이 아니고 조깅을 비롯한 육상도 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운동 자체와 사고(思考)의 깊이를 말할 때 골프만한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든지 골프에 입문했다가 그 참맛과 묘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대개 원리.원칙을 지키지 않고 어깨와 목에서 힘을빼지 못하는 사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게다가 정신적으로 성숙되지 못하면 골프의 도를 도리어 싫어하는 성향 을 지니게 된다고까지 말해진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도보다는 술이 앞서는 세상이 돼서인지 골프에대한 오해가 여기저기서 튕겨져 나오고 있는게 현실이다.공직자의골프금지령도 그러한 범주에 속하는 것이거니와 골프라는 운동 자체와 공직자의 위상,그리고 명령 아닌 명령으로 서의 금지령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 곰곰 생각해 볼 문제인 것같다.
나는 이른바 공직자 골프금지령도 잘못된 군사문화의 유산으로 보고 있는데 1인당 GNP 1만달러가 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목전에 둔 세계화지향의 나라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우리가 지향해야 할세계일류국가는 세계에 통용되는 상식이 거부돼서는 이루어질 수 없고 자칫 선진국의 조롱거리가 될 염려가 크다.만약 골프를 통한 공직자의 부패유착관련이 의심된다면 그것은 제도개혁에 속하는문제이지 공직자의 사생활이나 여가 선용을 명령 아닌 명령으로 제약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운동의 미덕(美德)을 제도의 악덕(惡德)을 호도하는 대상으로삼는 일은 지양해야 마땅하며 이렇게 될 때 사회적 분위기도 한층 성숙됨으로써 선진국에서 이해할 수 없는 묘한 일들이 차츰 자취를 감추게 되리라고 믿는다.
이규행 언론인.前 韓經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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