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모기지 빅2’ 국유화 … 9월 위기설 ‘헛방’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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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가을 들어 금융시장을 뒤흔든 ‘9월 위기설’의 뿌리는 두 갈래다. 하나는 미국의 신용위기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서 비롯된 미국 금융회사의 부도 위기가 세계 금융시장을 끊임없이 압박했다. 올 들어 외국인투자자들이 한국 증시에서 주식을 대거 팔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게다가 9월에 외국인이 보유한 국고채 만기가 집중되자 채권시장에서도 돈을 빼 가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증폭됐다.

다른 하나는 고공 행진을 계속한 국제유가다. 기름을 전량 수입하는 한국으로선 고유가는 바로 경상수지 적자로 이어진다. 외국인이 주식에서 돈을 빼가는 데다 경상수지 적자까지 불어나니 환율이 뛰어 오른 건 당연했다. 여기다 외국인이 채권시장에서마저 돈을 빼면 금리도 급등한다. 환율·금리 불안은 올 들어 대형 인수합병(M&A)을 위해 국내외에서 빚을 많이 얻은 일부 기업의 자금 악화설을 증폭하는 촉매제가 됐다.

◆발등의 불은 껐다=미국 정부의 모기지 회사 국유화는 9월 위기설의 뿌리 중 하나인 미국 신용위기를 진정시켰다. SK증권 최성락 연구원은 “미국 모기지 회사가 부도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외부에서 마구 돈을 끌어 모으는 바람에 미국 금융시장의 자금줄이 말랐는데 모기지 회사가 국유화돼 숨통을 틀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국내 주식·채권시장에서도 외국인이 돈을 대거 빼내 갈 가능성이 줄어든 셈이다. 9월 위기설이 무색하게 외국인은 이미 8월부터 국내 채권시장에서 순매수로 돌아섰다. 외국인이 채권을 계속 산다면 금리도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불안했던 국제유가도 최근 하락하고 있다.

◆남아 있는 불씨=9월 위기설은 헛방으로 끝날 가능성이 커졌지만 그렇다고 위기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불황의 터널에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푸르덴셜증권의 이영락 연구원은 “최근 미국과 유럽 경제는 누가 더 나빠졌는지를 겨루는 ‘못난이 게임’을 하고 있다”며 “최근 달러 강세는 미국 경기가 좋아져서라기보다 유럽에 비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정부가 반시장 정책이라는 국내외 비판을 무릅쓰고 모기지 회사 두 곳을 국유화한 것도 그만큼 미국 경제가 어렵다는 방증이다. 세계 경기가 안 좋은데 한국 기업의 실적만 개선될 수는 없다. 금융연구원 신용상 거시경제실장은 “환율이 안정을 찾고 있지만 경상수지 적자나 국내 금융회사의 외화 차입난이 근본적으로 해소된 게 아니다”며 “작은 악재에도 금융시장 불안은 재연될 수 있다”고 말했다.

◆9월 이후에 대비해야=9월 위기설의 고비는 11일이다. 정부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 10억 달러 발행과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결정은 물론 증권시장의 네 가지 파생상품 만기일이 이날 모두 겹친다. 그러나 이 같은 악재가 이미 시장에 반영됐기 때문에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보다는 9월 이후 불거질 가능성이 큰 숨은 악재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경제연구본부장은 “9월 위기설보다 앞으로 가계 부채와 저축은행이 안고 있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의 부실화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진단했다.

국제금융가에서 한국 채권의 신용도가 추락한 사실도 눈여겨봐야 한다. 현재 한국 채권이 부도났을 때를 대비해 가입하는 보증 수수료인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은 멕시코나 태국과 큰 차이가 없다. 한국 정부나 기업이 국제 금융시장의 신뢰를 잃는 순간 언제든 헤지펀드와 같은 투기자본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정경민·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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