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십자가 71년부터 생산해온 알부민 또한 이문을 남기기 힘든 품목으로 꼽힌다. 혈액 내 단백질 성분인 알부민을 생산하려면 원료인 혈장을 값싸게 구해야 하는데 조달원가가 급상승했다. 알부민은 혈액 내 단백질 함량이 떨어질 때 생기는 쇼크와 화상 등을 치료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 회사 혈액제제본부의 신민규 대리는 “원가 상승 압박이 심하지만 대체할 만한 의약품이 없어 포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업의 지상과제는 이윤을 남기는 것이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수익성 없는 사업을 붙들고 있어야 할 때가 있다. 특히 소비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킨다는 공공성을 짊어진 제약업계는 더욱 그렇다.
보령제약이 20년째 해온 복막투석액 사업도 마찬가지다. 복막투석액은 신부전증 환자에 꼭 필요하다. 처음엔 해외 업체와 기술제휴했지만 98년부터 순수 국내 기술로 생산해 왔다. 값은 외국계 제약사 제품의 80% 수준. 연매출 150억원으로 보령제약 매출의 8%에 이르지만 이 역시 20년간 흑자를 낸 적이 없다. 그래도 사업을 접지 않은 것은 창업자 김승호 회장의 고집 때문이다. 그는 “전체 시장의 95%를 외국계가 차지한 상황에서 보령마저 철수하면 투석액이 더 오를 것”이라며 사업을 접자는 내부 목소리를 일축해 왔다.
중외제약의 기초수액(5% 포도당) 또한 적자 제품이다. 환자의 수술이나 회복 때 필수 의약품이다. 1L짜리 기초수액의 보험약가는 1172원으로, 시중 편의점의 생수 가격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과·멸균·포장 등 13단계의 복잡한 공정을 거쳐야 하는 제품인데도 그렇다. 게다가 포도당 원료인 옥수수 값이 다락같이 뛰면서 수익성은 더 나빠졌다. 이 회사와 CJ·대한약품 등이 연간 1000억원의 내수시장을 형성하지만 3사 모두 매년 수액사업 부문 적자를 면치 못했다.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중외제약의 경우 지난해
제약업계의 목소리는 이렇다. “정부가 보험등재 의약품의 종류와 약값을 정하는 이상 제약사들은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필수의약품 사업을 접으면 당국의 눈 밖에 나는 것은 물론 국민 여론도 나빠질 것이니 고민스럽다.”
심재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