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북한 유엔관리 발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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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흔히 말하는 북한 붕괴론과 관련해 미국정부 일각에서 최소한 다음과 같은 세가지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필자는 이번 미국여행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했다.
첫째,북한은 과연 붕괴할 것인가,붕괴한다면 그 시기는 언제쯤일까에 관해서다.국무부가 국가나 체제 차원의 붕괴에 앞선 단계에서 김정일(金正日)정권의 붕괴도 앞으로 몇해 안에는 일어나지않을 것으로 파악하는 경향을 보여온 것과는 대조 적으로 국방부를 중심으로 하는 군부에서는 지금으로부터 3~5년 사이에 적어도 김정일정권은 무너질 것으로 전망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국무부는 국가와 체제및 정권의 3자를 엄격히 구분하고,그래서설령 김정일정권이 붕괴해도 사회주의 체제는 존속할 것이며,마침내 사회주의체제가 시장경제체제로 대체돼도 북한이라는 국가는 존속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그러나 군부에서는 3자 사이에 구별이 거의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는 쪽이 다수였다.일단 김정일정권이 무너지면 별로 큰 시차를 두지 않은채 사회주의체제도,「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잇따라 무너지리라는 분석이다.
둘째,「고장난 비행기」 북한을 연착륙시키려는 미국의 노력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해서다.이 중요한 정책적 쟁점에 대해 국무부는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그러나 군부안에서는 성공론 보다 실패론이 우 세해 보였다.식량지원을 포함한 경제지원이 결코 북한붕괴를 막을 수 없으며,그래서 북한은 불행하게도 대혼란 또는 심지어 유혈사태를 포함하는 「난폭한 상황」을 맞이할 것같다는 전망이 앞서는 것으로 비쳤다. 그러면 군부는 왜 그렇게 비관적으로 보는가.예컨대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에 연결된 몇몇 전문가들에 따르면북한의 경제파탄은 너무나 심각하고 정치체제와 경제구조에 직결된만성적 현상이어서 대규모의 장기적 「북한판 마셜 플랜 」을 실시하기 전에는 치유불가능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개혁.개방세력이 집권해 북한경제를 시장경제쪽으로 전환시킨다면 치유가 가능할까.비관론자들의 대답은 여전히 부정적이다.한마디로 말해 북한의 경제를 살려내고 북한을 연착륙시키기에는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셋째,북한이 붕괴한뒤 과연 어떤 상황이 펼쳐질 것인가에 관해서다.흔히 한국사람들은 북한이 하나의 국가로서 소멸하게 되면 한국에 의한 흡수통일이 실현되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데,그 믿음은 근거가 있는가.
이 물음과 관련해 흥미있는 답변이 며칠전 중앙일보에 보도된 미국 캔자스 소재 육군참모대학 데이비드 맥스웰 소령의 논문 「북한의 붕괴와 미군」을 통해 제시됐다.그는 북한이 쿠데타 또는김정일정권의 약화로 붕괴될 경우 한국은 유엔의 우산 아래 미국.중국및 러시아 등과 함께 연합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 것이다.그에 따르면 한국은 이 연합체제 지도아래 북한의 나머지 지도자들과 함께 북한을 관리하는 임시정부를 세워야한다.그리고는 북한의 군부를 무장 해제시키고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한 뒤 남북총선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은 비단 맥스웰 소령만의 발상이 아니다.미국의 군사전문가들 가운데 북한 문제에 관심이 큰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한 발상을 갖고 있다.그것은 북한의 붕괴가 곧바로 한국에 의한흡수통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시각을 제시 하는 것이다.
지난 50년10월 한국군과 유엔군이 북위 38도선을 넘어 북진을 계속하던 때 한국정부는 자신의 행정권을 북한에 확대시키려고 했다.그러나 미국과 유엔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북한이 앞으로 붕괴한다면 50년의 그 상황이 되풀이될 것 같다.북한의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북한붕괴론에 대해 다각적으로 진지하게 연구해 충분한 대비책들을 세워야 할 때다.
김학준 단국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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