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영어 의무화 방침 2주 만에 ‘OB’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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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가 백기를 들었다.

LPGA투어 캐럴린 비벤스 커미셔너는 6일(한국시간) 성명서를 통해 “내년부터 선수들을 대상으로 영어 사용을 의무화하겠다는 방침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열린 세이프웨이 클래식 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을 모아 놓고 영어 인터뷰 시험까지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전달한 지 꼭 2주 만이다.

비벤스 커미셔너는 이날 성명서에서 “각계각층의 의견을 청취한 결과 영어 사용 의무화와 관련한 벌칙 규정을 모두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비즈니스 기회를 증대시키기 위해 연말까지 수정안을 마련해 내놓겠다”고 밝혔다.

LPGA 측이 2주 만에 영어 의무화 정책을 취소키로 한 것은 무엇보다도 여론의 거센 역풍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파드리그 해링턴(아일랜드), 최경주(38) 등 PGA투어 선수들이 잇따라 LPGA 측의 방침을 비난한 데 이어 뉴욕 타임스와 LA 타임스 등 유력 신문들도 일제히 비판 논조의 기사를 실었다. 미국의 상·하원 의원들이 이번 조치를 제한하기 위해 나섰고, 시민단체들도 거세게 반발했다. 여기에 스테이트팜 보험사와 초이스 호텔 등 적잖은 스폰서들이 후원 계약을 중단할 뜻을 내비친 것이 결정타가 됐다. 사면초가에 몰린 LPGA는 백기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LPGA가 영어 의무화 정책을 철회하겠다고 밝혔지만 ‘영어 사용’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마크 리들리 토머스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과 테드 류 하원의원 등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LPGA 투어의 정책은 인종차별적인 처사”라며 정책 수정이 아닌 완전한 철회를 요구했다. 이들은 LPGA에 보내는 항의 서한에서 “영어 말하기 능력은 골프 선수가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은 아니다. 언어 능력이나 출신 국가에 근거한 기회 제한은 불공평하고 비합리적이며 불법적인 조치”라고 비난했다.

로스앤젤레스에 기반을 둔 한·미연합재단 그레이스 유 이사도 AP와의 인터뷰에서 “LPGA 투어 대회는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태국·한국·프랑스·일본 등에서도 열리는데 선수들은 이들 국가의 언어도 배워야 하나”라고 반문하면서 법적 대응을 계속할 뜻을 밝혔다.

골프위크의 칼럼니스트 론 시락도 “이번 조치는 명백하게 한국 선수들을 겨냥한 것이다. 만약 타이거 우즈가 영어를 하지 못했더라도 그에게 출전 정지를 명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LPGA 측이 서둘러 영어 의무화 정책을 철회한 것은 사려 깊지 못한 행동임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라고 밝혔다.

현재 LPGA투어에는 26개국 121명의 외국인 선수가 활동 중이며 이 가운데 한국 선수는 45명이다.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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