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 리허설이 프레스 리허설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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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 10면

연극ㆍ뮤지컬ㆍ오페라에서는 첫날 공연 티켓이 가장 인기다. 특히 신작을 초연하거나 새로운 연출로 선보이는 작품일 경우 오프닝 공연에는 당대에 내로라 하는 사교계 인사들이 총출동한다. 19세기 유럽에서 오페라 초연은 장안의 화제였다. 첫날 공연을 보고 나온 관객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오페라인지 어떤 노래가 감동적이었는지를 자랑스럽게 설명해 주곤 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의 무대이야기

카페에서 벌어지는 대화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면 가능하면 첫날 공연을 봐둬야 한다. 19세기 파리에서는 초연 오페라 작곡자의 이름은 공연 포스터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첫날 공연이 모두 끝난 다음 주역 가수가 무대로 나와서 작곡자의 이름을 공개했다.

‘무대 리허설’ 또는 ‘총연습’이라고도 하는 드레스 리허설은 원래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됐다. 작가의 친구 몇 명만 초대할 뿐이었다. 파리에서는 1870년대부터 가십 칼럼니스트, 무대를 스케치하는 화가, 몇몇 잘나가는 사람들이 드레스 리허설에 초대받았다. 무대 리허설을 처음으로 공개한 사람은 빅토리앙 사르두(1831~1908)다.

1882년 12월 12일 연극 ‘페오도라’ 초대권을 달라는 요구가 빗발치자 첫날 공연 대신 무대 리허설 초대권을 100장 정도 발행했다. 리허설 당일에는 500여 명이 들어왔다. 초대권 발행은 점점 늘어났다. 유력 인사들은 남보다 새로운 작품을 먼저 접할 수 있는 ‘특권’에다 전석 초대라는 점 때문에 첫날 공연보다 드레스 리허설을 선호했다.

드레스 리허설이 프레스 리허설로 자리 잡은 것은 1890년대부터다. 하지만 ‘르 피가로’의 연극 평론가 프란시스크 사르시(1827~99)는 드레스 리허설 초대를 거부했다. 만찬이 시작되기 두 시간 전에 어떤 손님을 미리 부엌으로 불러들여 그날 요리의 소스를 맛보게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무대 리허설을 보고 공연평을 쓰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당시 공연 종사자들은 무대 리허설을 망치면 공연이 성공한다는 미신을 믿고 있었다.

본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신문에 드레스 리허설을 기초로 쓴 리뷰가 게재되기도 했다. 사르두는 막이 오르기도 전에 ‘음독 사건(1907)’의 리뷰를 실었다는 이유로 ‘르 마탱’지를 고소했다. 리뷰를 보고 관객들이 실망한 나머지 첫날 공연부터 객석이 텅텅 비기도 했다. 요즘엔 본 공연에 앞서 프레스 리허설을 따로 마련하는 작품이 많다. 오페라의 드레스 리허설은 호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의 단체 관람 코스로도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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