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문가 기를 제도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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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가짜 문화재 시비로 전국이 시끄럽다.진위(眞僞)를 판별할 실력이 모자라 생긴 말썽도 있고,양심을 속이고 엉터리 문화재를 가라앉혔다 실제로 발견한양 발표해서 생긴 말썽도 있다.전자의 경우 측은한 느낌으로 끝날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 는 역사와 국민을 기만한 파렴치한 배신행위다.
문화재는 인간의 문화행위의 소산이다.그래서 문화재는 종류가 다양하다.또한 우리 문화재는 우리 역사의 유구함만큼 오랜 기간만들어졌기 때문에 수량도 많을 수밖에 없다.
문화재 종류와 수가 많은 만큼 문화재를 감정할 전문가가 많아야 할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의 비극이다.석기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이 땅에 살아온 우리 민족이 만들어낸 문화재를 알아보고 가치를 매길 수 있는 사람이 분야별로 있 어야 하고 또 시대별로 있어야 하는데 실제 문화재위원회에는 두루뭉수리로 분과위원회가 조직돼 있다.
문제의 총통(銃筒)은 조선중기 16세기 문화재이어야 하고 철제품(鐵製品)에다 글씨가 씌어 있다.이런 문화재를 감정하려면 그 시대 역사,특히 임진왜란과 충무공(忠武公)의 전문가,금속전문가,글씨전문가로 구성된 소집단이면 필요충분하다.
그런데 이 물건을 감정해 국보로 지정하는 과정에 불필요한 불교문화재 전문가와 그림 전문가가 참석했다.국보는 중요한 것이니까 여러 사람이 회의에 참석해 결정하면 올바른 결정이 나올 것같지만 그렇지 않다.
원인 불명의 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전문성 없는 시골의원들이둘러앉아 공동진찰 했다고 해서 치료법이 발견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진찰시간.진찰의사 수와 치료결과는 항상 정비례하지 않는다.이것이 바로 사회학의 파킨슨 법칙이다.
의원수준에서 확실한 병명을 모르면 좀 더 큰 규모의 병원에서진찰해야 하는 것과 같이 문화재 감정도 종류에 따른 감정위원회가 별도로 구성돼야 한다.석기를 감정하는 사람이 철제총통을 감정하기 어렵고,부처님 조각을 잘 본다고 해서 장 롱이나 도자기도 잘 알아보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화재를 전문으로 공부할 대학원 수준의 교육기관이 있어야 하고 그런데서 교육받은 사람들이 문화재 계통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아야 비로소 분야별 전문가가 길러진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대학에서 문화재관계학과를 졸업한 사람이 문화재관리국에서 일하는 사람이 드물다.왜 그럴까.첫째는 박봉(薄俸)이라 지원자가 드물고,둘째는 혹시 지원자가 있어도 특채될 제도적 장치가 없다.그러니 문화재라는 특수임무를 담당하는공무원중 임무를 수행할 전문소양을 갖춘 사람이 드물다.
또 한 분야에서 일을 좀 익힐 만하면 다른 부서로 진급 또는전출돼 가는 악순환이 지난 반세기 넘게 계속됐다.한때는 헌병장교출신이 그 기관의 장을 오래도록 한 적도 있는 나라다.
이제 우리는 망신할만큼 했다.또 다시 이런 수치를 겪지 않으려면 한가지 방책이 있다.의사를 길러내듯이 대학에서 문화재를 전공한 사람만을 뽑아 일선에 배치하는 길뿐이다.한번 배치되면 그 분야에서 전문가로 자라도록 자격증제도를 마련해 유자격자에게만 호봉이나 연구비를 올려주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수백개에 달하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모두 문화재 담당관리와 박물관을 두고 세우려 하고 있다.취직.진급만을 위한 인사제도를 과감히 개선해 문화를 사랑하고 역사를 연구하는 젊은 전문가들이 설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문화재정책은 소수의 허준(許浚)같은 명의(名醫)에기대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런 시대는 지났다.다수의전문의들이 각 분야에서 활약해야 한국문화재라는 환자를 고칠 수있는 시대다.
김병모(한양대교수.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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