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태국 경제 과소비로 몸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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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고도성장을 구가하는 태국 경제가 과소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보라위트라는 남자 대학생의 사례를 보면 그 심각성을 가늠할 수 있다.그는 3천2백달러짜리 롤렉스시계를 차고 5만달러짜리 독일제 BMW를 타고 다닌다.태국 부유층은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면 종종 고급 외제 승용차를 선물로 사주는 경우 가 있다.보라위트는 방학을 이용해 미국.영국.독일.이탈리아등 웬만한 선진국은 다 가보았다.옷장엔 알마니 T셔츠와 리바이스 청바지가 가득하다. 태국인들의 과소비 열풍은 경상적자에 시달리는 태국경제의 큰 골칫거리다.태국의 지난해 경상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무려 8.1%로 세계적 수준이다.과소비 탓에 태국의 가계저축률은 88년 13.5%에서 지난해 7.2%로 급전직하했 다.
물론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자본재 수입이 경상적자의 대부분(4분의 3)을 차지한다.하지만 사치품을 비롯한 소비재 수입비중이 이미 정상수준을 넘어서 국제수지에 커다란 위협요소가 되고있다.『아시아인은 근검 절약한다』는 소리가 태국 에선 더 이상통용되지 않는 모양이다.
태국 정부는 부랴부랴 승용차 대출과 신용카드 발행에 규제를 가했다.해외여행자의 면세품반입 상한액도 2백달러로 낮췄다.하지만 태국사회 특유의 과시적 소비풍조로 인해 이런 행정규제는 별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태국에선 신분이나 재력에 따라 대접받는 정도가 아주 다르다.
일단 부자처럼 행세해야 사회적으로 알아준다.따라서 고급차를 몰고 최신형 휴대폰을 들고 다닌다.팔에 1천달러짜리 수입핸드백을들고 다니는 여자라야 「귀부인」대접을 받는다.다 른 나라의 사치품은 태국에선 「사회생활의 필수품」인 셈이다.
한 명문대의 여학생은 『부잣집 아이들은 부티나지 않는 학생들과 상종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이 학생 역시 구치나 루이비통 핸드백을 쓴다고 했다.
고급차를 타지 않으면 비즈니스에도 지장이 있다.태국은행에서 일하는 한 외국인 컨설턴트는 값싸고 실용적인 일제 소형승용차를사려했다가 『값싼 차를 몰면 돈 많은 고객이 달아난다』는 점잖은 충고를 들었다.그의 상관의 자가용은 10만달 러짜리 메르세데스 E220.
많은 나라에서 저축을 늘리기 위해 국민연금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경우가 있지만 경제자율화를 추진하는 태국에선 이마저 여의치않다.외채가 이렇게 늘어날 경우 지난해초의 멕시코 금융위기가 태국에서 재현되지 말란 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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