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미국 대선] ‘비공식 행사’가니 … 공화당 전략 보이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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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미국 정당의 전당대회에는 한국과 달리 비공식 행사가 많다. 통상 나흘간 진행되는 대회에서 당원들은 각종 식사 모임이나 리셉션을 통해 서로 얼굴을 익히고 교류를 한다. 이런 행사는 언론에 공개되지 않는 만큼 미국 기자들도 접근하기 어렵다. 그래서 연사들은 언론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말문을 튼다. 당의 핵심 간부인 그들의 연설을 들으면 그 정당의 속셈을 짐작할 수 있다.

공화당 전당대회 전야인 지난달 31일 저녁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러시아미술관엔 당원 100여 명이 모였다. 대회를 앞두고 당에 고액 헌금을 낸 사람들을 위한 리셉션이 열린 것이다. 이들은 1인당 4500달러(플래티넘급), 1850달러(골드급) 또는 그 이하 금액(이글급 등)을 낸 사람이다. 당은 이들을 인상주의(impressionism)로 분류되는 러시아 화가들의 그림이 전시돼 있는 미술관에 초대했다. 그리고 와인·칵테일·주스 등 여러 종류의 술과 음료, 양고기와 쇠고기 요리 등 각종 음식과 과일을 대접했다. 기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자문위원이며 한국계론 유일한 공화당 최고액 기부자(연 25만 달러 이상)인 임청근(미국명 척 림) 한·미동맹협의회 총재의 손님 자격으로 리셉션에 참석했다. 1994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40년간 장악한 의회를 탈환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상원 군사 위원회 소속인 존 코닌 의원 등의 모습이 보였다.

깅리치 전 의장에게 “공화당 대통령 후보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세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걸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깅리치는 “아주 탁월한 선택”이라며 “민주당이 당황할 것”이라고 답했다. “페일린은 (민주당 대선 후보인) 버락 오바마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조 바이든(상원의원)과 대조된다. 오바마가 변화를 얘기하면서 워싱턴 기성정치를 상징하는 바이든을 선택한 건 모순이다. 반면 페일린은 (알래스카주 공화당 부패 문제를 지적하는 등) 공화당 문제에도 도전하면서 진짜 변화(real change)를 실현한 개혁적인 공화당원이므로 당내의 ‘이단아(maverick)’ 매케인과 잘 어울린다”고 했다.

깅리치는 연단에 올라서도 페일린을 한껏 치켜세웠다. 그는 “자화자찬성 책을 쓴 오바마는 민주당에 도전한 적이 없다”며 “오바마가 변화를 얘기하지만 페일린에게 못 미친다”고 했다.

코닌 의원도 페일린에 대해 비슷한 말을 했다. “바이든 지명은 감동을 못 줬지만 페일린 지명은 국민의 기대와 관심을 촉발했다. 요즘 ‘페일린이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답하느라 바쁘다. 공화당원들이 지금처럼 흥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임 총재는 “깅리치가 강조한 게 페일린에 대한 구전홍보의 핵심이 될 것”이라며 “선거에 능한 공화당이 이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미니애폴리스=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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