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미모 여간첩 장교 4명 ‘성 포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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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로 위장해 국내에 정착한 뒤 사업가로 활동하며 군사기밀 등을 빼내 북한에 넘겨온 30대 여간첩이 국내 암약 7년 만에 검찰에 구속됐다. 특히 상당한 미모를 갖춘 이 여간첩은 군부대 장교들을 포섭하는 과정에서 성(性)을 도구로 사용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위장 탈북한 남파 간첩이 적발된 것은 드문 일이다. 남북화해 무드가 조성됐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적발된 남파 간첩은 제3국을 통해 국적을 세탁한 뒤 침투했다가 검거된 정경학이 유일하다.

이 사건을 공동으로 수사해온 수원지검과 경기지방경찰청, 국가정보원, 국군기무사령부 합동수사본부는 27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 청사에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합동수사본부는 위장 탈북해 정착지원금까지 받은 뒤 간첩 활동을 해온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직파간첩 원정화(34·여)를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또 원정화의 애인으로, 탈북자 명단 등 보안 정보를 넘겨준 육군 모 부대 황모(26) 중위를 간첩방조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원정화의 상부 공작선이자 양아버지인 남파 간첩 김모(63)씨도 구속, 수사 중이다. 원정화는 북한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인 김영남의 먼 친척인 것으로 알려졌다.

합동수사본부에 따르면 원정화는 2001년 중국동포를 가장해 국내에 입국한 직후 국정원에 탈북자로 위장 자수했다. 이후 군부대를 돌며 반공 강연을 하면서 알게 된 황 중위 등 경기 북부 지역 부대 정훈장교 3~4명에게 이성 교제를 미끼로 접근해 군부대 사진, 위치, 군 장교 명함 등 군사 기밀을 빼낸 것으로 조사됐다.

원정화는 2005년 국정원·하나원(탈북자 교육기관)·대성공사(탈북자 조사기관) 등 국가 주요 시설의 위치, 하나원의 동기 명단, 탈북자 출신 안보강사 명단 등을 파악해 보고한 혐의다. 또 2006년 탈북자 단체 간부인 김모씨와 군 정보요원 등을 통해 북한 노동당 비서 출신 황장엽씨의 거주지를 파악하려 시도하고 남한 내 비전향 장기수의 실태를 파악해 보고하기도 했다.

원정화는 대북 정보요원 김모씨를 살해하라는 지시와 함께 살해 도구인 독침과 독약을 받았다고 자백했 다. 원정화는 특히 탈북자 출신 가운데서 드물게 군 안보 강연 강사로 발탁돼 2006년 9월부터 2007년 5월까지 50여 차례 군 안보 강연을 하면서 “북핵은 자위용”이라고 말하는 등 북한 주장에 동조하고 북한을 찬양하는 CD를 상영했다.

원정화는 이 같은 간첩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2002년 10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모두 14차례에 걸쳐 중국으로 출국, 중국에 있는 북한 보위부를 방문해 국내 활동 상황을 보고하고 각종 지령을 받아 수행한 혐의도 받고 있다. 2001년 9월~2006년 12월 재중 북한 보위부에서 공작금으로 6만 달러 상당의 돈과 물품을 받았다.

이번 여간첩 사건은 원정화가 젊은 군 장교들과 잇따라 교제하고 있다는 사실이 석연치 않다고 보고 경기지방경찰청과 기무사령부가 2005년부터 내사에 착수한 뒤 3년여 만에 전모가 드러났다. 수사당국은 지난 7월 15일 원정화가 북한 보위부에 남한의 군 관련 보고를 하는 것을 포착하고 그녀를 체포했다.

이상언·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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