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용천참사 개혁개방 기회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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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용천역 열차 폭발사고로 크게 훼손된 용천소학교의 모습. [신화=연합]

평안북도 용천역 열차 참사가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이끄는 뜻밖의 기폭제가 될 수 있을까. 지난 22일 용천역 참사가 알려진 후 외부세계 지원의 손길이 이어질 것으로 보여 북한의 태도에 따라 개방쪽으로 선뜻 다가갈 가능성이 있다. 북한도 용천역 참사의 사상자를 돕기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 소식을 주민들에게 적극 알리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그리고 유럽연합(EU)의 주요 회원국들이 잇따라 북한에 구호물자 지원 의사를 표명했고, 이 가운데 중국이 보낸 1천만 위앤(한화 약 15억 원) 상당의 구호품이 25일 룡천지역에 맨 먼저 도착했다.

또 유엔기구가 중심이 돼 유럽연합 인도주의업무국(ECHO) 등이 참여한 국제조사단과 국제 비정부기구(NGO) 관계자들의 피해조사 활동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북한의 조선중앙방송은 25일 중국의 구호물자 지원 소식을 머리기사로 전하고 "지금 많은 나라 정부들과 국제기구 및 단체들에서 우리 나라(북)에 인도주의 협조를 제공할 용의를 계속 표시해오고 있다"고 전했다. 조선중앙방송은 이어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22일 우리나라(북)의 평안북도 룡천역에서 부주의로 발생한 화차 폭발사고와 관련하여 1000만 위앤(한화 15억원 상당)분의 긴급 구제물자를 무상 제공하기로 결정했다"고 구체적인 지원 내용을 처음 공개했다.

이에 앞서 조선중앙텔레비전은 전날 밤 "우리 나라 주재 여러 나라 외교대표들과 국제기구 대표부 성원들이 사고현장을 돌아보고 의약품, 식량, 생활필수품을 비롯 협조물자들을 24일 기증했다"면서 "이러한 인도주의협조는 피해를 가시기 위한 우리 인민의 노력을 고무해주고 있다"고 감사를 표시했다.

▶ 북한 용천 열차 폭발사고 현장. 열차 선로가 엿가락처럼 휘어져있다. [신화=연합]

북한의 대형 참사와 관련 국제사회에서 이처럼 발빠르게 여러 나라가 참여한 광범위한 지원을 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 뿐 아니라 북측이 도움의 손길을 적극 요청한 일도 드물다.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의 박길연 대사는 23일 미국 동포언론인 '민족통신'(minjok.com)과 회견에서 "조국(북)에서는 이 재난과 관련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알고 있는데 우리 대표부도 이 문제에 대해 지원을 요청할 기회를 가지려고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2002년 말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 북한을 대하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싸늘했다. 작년 한 해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은 유엔기구 1억1,622만 달러, 개별국가 816만 달러, 국제 민간기구 3,575만달러 등 모두 1억6,013만 달러로 2002년의 2억5,727만 달러에 비해 크게 줄기도 했다.

그러나 용천역 열차 참사를 계기로 북한에 도움을 주려는 국제사회의 온정은 핵 파문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갈 것으로 보이며, 국제사회의 이런 노력은 북한 지도부에게 개혁개방의 '체감지수'를 높여주고 결국 핵문제 해결에도 유리한 환경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더욱이 국제사회의 구호품이 해주와 남포, 평양을 거쳐 용천지역으로 보내질 가능성이 커서 북한 주민들은 국제사회의 '온정'을 어느 때보다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일각에서는 이번 사고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나간 길목에서 발생해 앞으로 사회통제를 더욱 강화할 것이란 전망도 내놓고 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은 "용천 열차 참사는 북한 지도부에게 엄청난 심리적 충격을 줬을 것"이라며 "앞으로 북한이 어느 쪽으로 가야할 것인지를 확실하게 느끼도록 해 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용천역 참사 소식을 내부적으로 적극 전파하고 있는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사고 현장을 조기에 복구하고 체제유지에 부정적인 유언비어 등을 불식시키기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연합뉴스,디지털뉴스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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