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들, 흑인 대통령 받아들일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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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 22면

1982년 11월 2일.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가 치러진 이날 저녁 몇몇 방송사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주지사가 탄생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민주당 흑인 후보로 여론조사에서 줄곧 우세를 보인 톰 브래들리가 출구조사에서도 공화당 백인 후보인 조지 듀크메지안을 따돌렸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는 초판에 ‘브래들리 당선’을 머리 제목으로 달아 배달했다.

관전 포인트<2>-브래들리 효과(Bradley effect)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달랐다. 브래들리의 패배였다. 이후 흑인 후보가 출마한 선거에서 비슷한 사례들이 잇따랐다. 이른바 ‘브래들리 효과(Bradley effect)’다. 백인 유권자들이 여론조사에서 흑인에 대한 편견을 가진 것으로 비춰지는 것을 두려워해 속마음과 달리 흑인에게 표를 찍는다고 밝히고 실제로는 백인 후보에게 표를 던져 나타나는 현상이다.

26년의 세월이 흐른 2008년. 미국인들은 흑인 주지사가 아닌, 흑인 대통령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을까. 브래들리 효과가 재연되는 것은 아닐까. 케냐 출신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한 버락 오바마가 다크호스로 부상하면서 쭉 제기된 의문이다.

최근 존 매케인과 버락 오바마 간의 지지율 격차가 좁혀지고 일부 조사에선 매케인이 오바마를 앞질러 역전했다는 결과까지 나온다. 이를 두고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오바마가 얻은 지지율이 실제보다 과장된 것 아니냐는 분석들이 제기된다. 실제로 오바마는 힐러리 클린턴과의 당내 경선 때 여론조사나 출구조사에 비해 개표 때 더 낮은 득표율을 보였다. 그런 곳이 28개 주나 됐다. 공개 투표로 치러진 아이오와 경선에선 압승했지만 비밀투표로 진행된 뉴햄프셔에선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힐러리에게 3%포인트를 졌다.

미국인들은 백인·흑인을 가리지 않고 ‘흑인 대통령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답한다. 뉴욕 타임스와 CBS의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70%의 유권자들은 ‘준비가 돼 있다’고 응답했다. 2000년 조사에서 38%만 ‘그렇다’고 대답한 것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진전이다. 올 1월엔 54%, 3월엔 62%, 6월엔 68%로 꾸준히 늘었다. 문제는 전체 인구의 66%를 차지하는 백인들이 갖는 오바마에 대한 거부감이다.

7월 조사에서 흑인 가운데 83%는 오바마를 지지했지만 백인들은 31%만 오바마를 선호했다. 37%는 ‘싫다’고 했으며 나머지는 ‘결정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최근에는 무당파와 남녀 백인 유권자의 표심이 매케인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여기에다 ‘브래들리 효과’까지 작용한다면 오바마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의 부인 미셸에 대한 백인 유권자의 지지도는 24%에 불과하다.

그러나 오바마의 확고한 지지층인 흑인 유권자, 인종을 문제 삼지 않는 젊은 층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 등 유리한 변수도 적지 않다. 89년부터 7년간 치러진 주지사·상원의원 선거를 분석한 대니얼 홉킨스 박사(하버드대)는 “90년대 중반 이후 브래들리 효과는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89년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 여론조사에서 선거 전날까지 9~15%포인트 앞서가다 투표 당일 0.5%포인트 차이로 신승한 더글러스 와일더(이후 브래들리 효과를 와일더 효과로도 부른다) 리치먼드 시장은 “사라졌다고 말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미 언론사 인터넷 사이트의 댓글 중에는 “백인들이 200여 년간 장악한 정치권력을 흑인에게 쉽게 내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란 흑인 유권자의 글도 자주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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