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주 “조카에게 금메달 주려했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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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주右가 22일 복싱 웰터급 준결승전에서 바키트 사르세크바예프(카자흐스탄)의 얼굴에 펀치를 날리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한국 복싱의 마지막 기대주 김정주(27·원주시청)가 금메달 도전에 실패했다. 김정주는 중국 베이징 노동자체육관에서 열린 바키트 사르세크바예프(카자흐스탄)와의 베이징 올림픽 복싱 웰터급(-69㎏)급 준결승전에서 6-10으로 패해 결승진출에 실패, 동메달에 그쳤다.

뜻밖의 부상이 결승행을 가로막았다. 존 잭슨(미국령 버진군도)과의 2회전 경기에서 잽을 날리다 왼손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한 이후 제대로 왼손을 뻗지 못했다. 김정주는 “경기 전에 마취주사를 맞았지만 뼈에 문제가 있어 아무 효과가 없었다. 그래도 진 것은 내 탓”이라며 자책했다.

아테네 대회에 이어 2회 연속으로 올림픽에서 귀한 동메달을 따냈지만 그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20년 만에 복싱에서의 올림픽 금메달 도전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복싱 대표팀 동료가 모두 탈락한 상황에서 모두가 그에게 기대를 걸었다. 김정주는 “20년 만에 금메달을 따 꼭 한국 복싱을 부활시키고 싶었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여기에다 조카와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게 김정주는 못내 안타깝다. 그는 좋은 외삼촌이 되고 싶었다. 열한 살 때 간암으로 아버지를 여의었고 열네 살 때는 어머니마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이후 일곱 살 위의 큰누나 정애(34)씨가 김정주의 어머니 노릇을 했다. 그런 누나가 2003년 결혼한 뒤 지난해 12월 귀한 아들을 얻었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3남매가 어렵게 살아온 김정주에게 새로 태어난 혈육은 애틋하기만 했다. 정애씨는 남동생 뒷바라지를 하느라 결혼까지 미뤘다. 김정주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포상금 1000만원을 누나 결혼 밑천으로 내놓았다.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김정주는 자신이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하는 조카 중혁이에게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어주겠노라 약속을 했다. 정애씨 부부는 이날 베이징 노동자경기장에서 목이 터져라 동생과 처남의 선전을 기원했다.

김정주는 경기 후 “ 조카한테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 지금 누나가 가장 보고 싶다”고 말했다.

베이징=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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