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교직개혁 '恐청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 강홍준 정책기획부 기자

23일 서울 서초동 서울교육대에서 열린 '교원인사제도 혁신 공청회'.

기조연설에 나선 이종재 한국교육개발원(KEDI) 원장이 마이크를 잡자 사방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무릎 꿇고 빌어" "당신 물러나야 해" "기득권 세력과 영합한 교육부.교육개발원 규탄한다"등….

교사들의 경쟁력을 키우고 사기를 높이자는 취지로 마련한 이날 공청회는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KEDI가 중심이 돼 지난해 7월부터 의견을 수렴해 왔던 사안이 좌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강단 앞줄에 줄지어 선 전교조 등 교원노조 소속 조합원 30~40명은 피켓을 들고 공청회 시작부터 계속 구호를 외쳤다. 아예 공청회를 열지 못하게 하겠다는 심사였다.

얼마 안 돼 주최 측은 "교직단체의 방해로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하다. 발표 내용은 책자에 있으니 의견이 있으면 별도로 알려달라"며 공청회를 중단했다.

한 참석자는 얼굴을 붉히면서 "저런 사람들을 교사라 할 수 있느냐"며 흥분했다. 그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는 공청회가 아니라 삿대질에다 고성까지 참고 들어야 하는 '공(恐.두려울 공)청회'였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교직을 개혁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DJ 정부 시절엔 '교직발전 5개년 계획'도 세웠지만 그 이후 달라진 게 거의 없다. 남은 건 보고서뿐이다.

교직의 문을 열자는 주장이 나오면 교직단체는 어김없이 발끈했고, 평가를 하자는 얘기가 나오면 "가뜩이나 어려운데 사기 꺾지 말라"는 항의만 거셌다.

세계는 지금 개방과 경쟁을 요체로 한 교육혁명 중이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도 교직의 철밥통을 깨고, 무능력한 사람을 퇴출시키는 작업이 한창이다. 일본과 미국에서는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을 받지 못한 학교는 과감히 도태된다.

우린 어떤가. 이날 공청회는 '평가도 경쟁도 담장 밖의 얘기'로 간주하는 우리 교육계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줬다. 이래선 교육 경쟁력이 요원하다. 언제까지 학생.학부모가 바라는 변화의 요구를 외면할 것인지 묻고 싶다.

강홍준 정책기획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