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지성] 콜럼버스 울린 ‘아메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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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사람들에게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지브롤터 해협은 ‘세상의 끝’과 맞닿은 바다였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를 향한 열망은 바다 너머의 세상을 열었다.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걸친 20여년 동안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했고, 바스코 다가마는 인도 항로를 개척했으며, 마젤란은 세계일주 항해에 성공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있다. 아메리카 대륙은 그의 이름을 따 이름 붙여졌다. 신대륙을 발견한 건 콜럼버스였지만, 이름을 신대륙에 붙이는 영광은 베스푸치에게 돌아갔다. 뉴욕 타임스가 ‘1000년 내 최대 실수(Millenium Mistake)’로 선정한 아메리카 명명의 오류는 베스푸치에게는 영광이자 치욕이었다. 한편에선 위대한 발견자로 대접했지만, 다른 한편에선 없는 사실을 꾸며내 콜럼버스의 명예를 약탈해 간 사기꾼이라고 비난했다.

그렇다면 왜 아메리카 대륙에 베스푸치의 이름이 붙었을까?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는 사료를 통해 ‘베스푸치 사건’이 우연과 오해로 비롯됐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이 오류가 베스푸치의 탓이 아니라고, 그의 누명을 벗겨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했지만 죽을 때까지 그곳을 인도로 착각했다. 베스푸치는 아메리카를 발견하지 않았지만, 그곳이 신세계라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았다. 츠바이크는 “인류 역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행동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행동에 대한 인식과 그 행동의 영향이기 때문에 베스푸치가 영광을 얻을 만했다”고 본다. 식민지 총독으로 원주민을 핍박한 콜럼버스보다는 나이 오십에 운명을 걸고 대양으로 나간 베스푸치가 신대륙의 이름에 오히려 걸맞을 법도 하다.

역사의 오류와 오해가 풀리는 과정을 퍼즐 조각을 맞추듯 흥미롭게 엮은 『아메리고』는 세계 3대 전기작가로 꼽히는 츠바이크의 유작이며, 국내에서는 처음 번역됐다.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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