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의 페달 ②

중앙일보

입력

잘 갖춰진 한강변 길을 빠져나온 네 남자는 구리 부근에서부터 양평으로 가는 국도로 진입했다. 국도! 길 양옆으로 길게 펼쳐진 넉넉한 시골 풍경과 자연 그대로의 냄새가 훅 끼쳐왔다. 국도에서 느낄 수 있는 이 낭만! 그러나 국도이기에 훅 끼쳐오는 위험! 자동차들이 씽씽 달리는 길에서 네 청년들은 바짝 긴장을 했다. 게다가 서울역에서 구리까지 2~3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를 무려 5시간에 걸쳐 달려온 상태라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들의 체력은 거의 바닥이 보일 지경이었다. 정신력으로 버티는 수밖에!

# 국도 한복판에서 맛본 꿀맛

“잠깐 정지~, 기다려 봐! 내가 가서 참외 좀 얻어올게. 내가 이런 일 전문이잖우.”
때마침 참외밭을 지나던 수양이의 제안이 모두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수양이는 약 20분쯤 지난 뒤 양손에 무언가를 한 아름 안아들고 돌아왔다. 금의환향이라도 하는 듯 의기양양한 미소가 만연했다. 수양이는 참외 8개, 복숭아즙 4개, 소금 한 봉지를 내려놓았다. 모두들 허겁지겁 달려들어 먹기 시작했다. 훤칠한 외모와 탁월한 넉살로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들을 완전히 사로잡은 모양이다. 아무튼 고맙다! 그런데 복숭아즙을 들이키던 막내가 물었다.
“형, 소금은 왜?”
순간 나머지 네 남자들의 구박이 이구동성 합창으로 이어졌다. “이래서 군대를 가야 돼. 아, 이건 상식이잖아! 땀으로 쏟아낸 염분을 다시 채워야 할 거 아냐?”

# 자전거용 장비, 그 빛을 발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듯한 국도, 찌는 듯한 무더위, 페달을 밟으면 밟을수록 바닥나는 체력, 되돌아가기에도 막막한 지점…. 앉아서 쉴 만한 휴식처도, 땀을 식힐 만한 그늘도 없었다. 아, 이게 바로 무한도전? 곧게 뻗은 국도 위에는 ‘양평’이라고 쓰인 이정표 하나 달랑 서 있을 따름이었다. 문득 네 남자 사이에 밀도 높은 고독과 의지의 기운이 흘렀다. 모두들 자신과 싸우는 중이었다.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이 페달을 밟던 네 남자는 길고 고단한 레이스를 잠시 중단하고 모두들 자전거에서 내렸다.
“자꾸만 땀이 눈에 들어가.”
“나는 엉덩이에 감각이 없네.”
“손에 물집이 잡혔어.”
모두들 한 마디씩 했다. 그런데 각기 조금씩 다른 고통을 호소했다. 자전거용 장갑을 낀 수양의 손은 멀쩡했고, 자전거 팬츠를 입은 진권이는 엉덩이 부분에 있는 쿠션 덕에 편안했고, 손수건으로 머리와 팔 다리를 감은 현희는 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어떤 장비도 착용하지 않고 맨 몸으로 자전거를 탄 성근은 전방위적으로 고통스러웠다. 성근은 그저 다짐하고 또 다짐할 뿐이었다. 다음번에 한 번 더 자전거 여행에 나선다면 불타는 의지와 절대적으로 완벽하게 무장하리라!

# 곳곳에서 도사리는 위험요소들

구리에서 양평으로 이어지는 길은 6번 국도다. 총 길이는 약 40km 정도이고, 팔당 부근에서는 5개 정도의 터널을 통과하게 된다. 6번 국도로 들어선 초반에는 길도 평평하니 자전거를 탈만했다. 양옆으로 논밭이라 인근지역에서 물을 먹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중반에 접어들면서 그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가도로가 나타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르막길도 있었다. 팔당 터널은 자전거로 달리기에는 굵은 돌이 많고, 자동차들도 빠른 속도로 지나가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돌을 피하려다 자칫 차도 쪽으로 쓰러질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지나갈 때면, 그 속도 때문에 굉음과 함께 큰 바람이 일어 자전거가 흔들리기도 한다. 터널을 지나는 동안 팔과 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 긴장해야 한다.

# 구멍 난 타이어에 대처하는 자세

시계 바늘은 이미 오후 8시를 넘기고 하늘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양평까지 남은 거리는 약 10km. 거의 다 온 셈이다. 조금만 더 힘내자고 서로를 다독거리고 있는데, 수양의 목소리가 다급하다.
“형~, 형~, 큰일 났어! 내 타이어가 펑크났어.”
수양에게 임시 타이어봉합장비가 있었던 게 정말 다행이었다. 불을 붙여서 고무부분을 녹인 다음 구멍이 난 부분에 붙이는 간단한 조치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초보라이더인 네 남자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던 모양이다. 타이어 하나를 넷이 붙들고 수차례 구멍을 메우려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게다가 간신히 구멍을 메운 줄 알았는데 5분도 채 안돼 다시 바람이 샜다.
‘아~ 이를 어쩌나.’ 남은 거리 10km. 목적지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네 남자는 설왕설애 논의 끝에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결정했다. “저희 좀 태워주세요. 플리즈~!” 꽤 오랜 시간 트럭이 지날 때마다 쇼아닌 쇼를 펼친 결과, 양평 행 트럭을 만날 수 있었다.
결국 네 명의 초보라이더는 자전거만으로는 양평에 도달하지 못할 운명이었던가 보다. 히치하이킹의 재미와 실패한 자전거 완주의 아쉬움이 뒤섞였다. 하지만 어쨌든 하루 만에 서울에서 양평까지 도착했다는 사실, 한달 보다 더 긴 것 같았던 하루가 끝났다는 사실이 몹시도 기뻤다. 3만 원짜리 숙소에서 떡만두국에 공기밥을 말아 먹으며 서로를 격려하고 축하했다. 만찬의 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3편에 계속)

객원기자 최경애 doongje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