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쇠고기 파동이 바꾼 추석 선물 풍속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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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게인(Again) 2004!’-.

백화점 업계가 추석 특별판촉 준비에 들어간 지난달 초순, 현대백화점의 임현태 생선 바이어는 서울 압구정동 본사 사무실 책상 앞에 이런 구호를 큼지막하게 써붙였다. 그는 올 추석용 굴비·갈치·옥돔 선물세트 물량을 지난해 추석보다 50% 정도 많이 확보했다. 종전 굴비세트 납품업체가 물량을 다 대지 못해 두 곳에 추가 주문을 넣었다.

“수산물 코너에 엄청 큰 장이 설 것 같아요. 잘하면 사상 최대 매출실적을 낸 2004년 설 특수 때보다 수산물 선물세트를 더 많이 팔 수 있을 것 같아요.” 몇 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 대목을 앞두고 임 바이어의 얼굴엔 비장감마저 서려 있었다.

◇정육·청과 시름에 생선은 방긋=올 추석 선물세트 시장은 생선의 약진이 예상된다. 백화점·대형마트 등 유통업계는 수산물 선물세트 물량을 지난해 추석보다 30~50% 늘려 잡았다. 벌써 철야근무를 하는 가공업체가 많다.

수산물의 호조는 경합 품목의 침체 덕분이다. 명절 때 최대 매출을 자랑해 온 쇠고기 선물세트는 광우병 이슈로 매출이 주춤할 전망이다. 추석이 예년보다 열흘 정도 빨라 채 익지 못한 과일이 많아 과일선물세트 값은 예년보다 20% 안팎 비싸다.

수산물 업계의 전설로 회자되는 2004년 설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은 건 이 때문이다. 2003년 말 광우병 파동의 여파로 당시 수산물 선물세트의 매출은 업체별로 전년 대비 50~100% 뛰었다. GS리테일의 박준석 과장은 “당시엔 그 비싼 굴비를 없어서 못 팔았다. 올해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걸로 보고 굴비 주문을 예년보다 30%가량 늘렸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올 추석 정육·청과 선물세트 매출이 지난해보다 10% 정도 줄 것으로 본다.

지난해 참조기·갈치가 풍어여서 주요 선물 품목의 가격도 안정적이다. 추석 굴비세트는 보통 전년 가을에 잡힌 참조기를 말려 만들고, 갈치세트는 전년 겨울 갈치를 얼려 만든다. 롯데마트의 김영태 과장은 “올 추석용 굴비·갈치는 유난히 살이 단단하고 알이 굵지만 값은 예년 수준”이라고 전했다. 수산물 가공업계는 콧노래를 부른다. 굴비를 가공하는 금호통상의 이상구 이사는 “시간제 인력을 10명 더 고용했지만 주문량을 따라잡으려면 밤 9시까지 야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에 대중화 전략=수산물 업계에 찾아온 절호의 기회를 확실히 활용하려고 큰 유통업체의 생선 바이어들은 대중화 전략을 택했다. 5만~10만원대 중저가 세트 비중을 늘려 과일 세트를 사려던 이들까지 끌어들이자는 것이다. 움츠러든 경기가 이런 계산에 포함됐다. 이마트는 수산물 선물세트 주문량을 지난해 추석보다 8000세트 정도 늘렸는데, 이 중 6000세트가 10만원대 이하의 중저가 세트다. 김윤섭 홍보과장은 “상대적으로 값이 안정적인 수산물과 공산품에서 저가제품의 비중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굴비·갈치 일색이던 상품 구색이 다양해진 것도 올 추석의 특징. 소비자의 발길이 수산물 코너에 오래 머물게 하려는 것이다. 현대백화점은 꽃게·참치·전복 등 비인기 수산물 세트의 종류를 올 설에 비해 19가지 추가했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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