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은영의 DVD세상] 우아한 무협영화도 있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9면

감독 : 호금전 주연 : 정패패.악화
화면비 :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 2.35:1
사운드 : 돌비 디지털 5.1 자막 : 한국어 제작사 : 스펙트럼

영화 ★★★★★ 화질★★★★ 음질 ★★★☆

나지막한 음악 소리가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양손에 짧은 검을 든 여인이 화면 가운데로 사뿐히 날아든다. 그녀의 주변을 둘러싼 한 무리의 복면 괴인들. 서로를 살피며 빈틈을 노리는 그들의 주변을 따라 카메라가 서서히 움직이는 가운데 마치 춤을 추듯 가볍게 허공을 박차고 날아 올라 화려한 대결을 펼치는 그들의 모습이 펼쳐진다.

장철과 함께 홍콩 무협영화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호금전의 영화는 이렇듯 한 편의 잘 짜여진 베이징 경극, 즉 베이징 오페라를 보듯 절도 있는 대결 장면으로 가득하다. 1966년 작 '방랑의 결투'는 이른바 호금전식 액션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며, 그 유명한 객잔 대결 신이 등장하는 첫 번째 영화이기도 했다. 영화사적으로도 이 작품은 홍콩 무협영화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최초로 한영걸이라는 전문 무술 감독을 기용했던 이 작품은 잘 짜여진 안무처럼 극도로 절제되고 우아한 무술을 선보였던 것이다.

영화는 도적의 무리에게 납치된 오빠를 구하기 위해 혈혈단신 적진으로 뛰어든 여주인공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사실 그녀는 '황금제비'라는 뜻의 '금연자'로 불리는 절정 고수. 하지만 독침에 맞아 의식불명이 된 그녀는 스승의 원수를 찾기 위해 주정뱅이처럼 떠돌던 대취협의 도움을 받게 된다. 사실 '금연자'를 연기한 정패패는 무협과는 거리가 한참 먼 발레리나 출신이었다. 호금전은 우아한 춤에 가까운 자신의 무협영화에는 실제 무용을 전공한 그녀가 더욱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정패패는 이 영화로 당대 최고의 스타로 떠오르게 됐다.

영화는 어쩌면 빠른 편집과 화려한 특수효과에 익숙한 최근 관객에게는 오히려 낯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옛날 두세 편의 영화를 동시 상영하던 3류 극장에서 혈기 넘치는 청춘을 불살랐던 세대에게 호금전과 장철, 그리고 홍콩 무협영화는 분명 남다른 존재였다. DVD 역시 원제인 '대취협'이 아닌 국내 개봉 제목이었던 '방랑의 결투'로 출시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더욱이 와이드 화면 가득 펼쳐지는 DVD 특유의 선명한 화질과 사운드로 보고 듣는 감흥이라니. 하지만 그렇다고 그저 지나간 세대의 그 시절을 추억하는 회고조의 영화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를 보노라면 80년대 홍콩 누아르는 물론 '와호장룡'이나 '킬 빌' '매트릭스' 같은 최근작까지, 얼마나 많은 영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특히 '금연자' 정패패는 '와호장룡'에서 간악한 푸른 여우로 연기했던 바로 그 배우.

그런 점에서 DVD 서플로 수록된 음성해설은 필견이다. 류승완 감독과 영화 주간지 주성철 기자의 해설은 자칫 지루하게 느낄 젊은 관객들도 영화를 다시 보게 할 정도로 확실한 재미를 보장한다. 이 해설은 자체가 무협영화의 계보를 종횡무진 누비는 즐거운 길찾기다.

*** 조 장면

적들로 가득 찬 객잔 한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앉은 금연자. 곧 좁은 객잔 안은 순식간에 숨막히는 대결장소로 돌변한다. 우아하면서도 풍류와 긴장감 넘치는 ‘객잔 영화’의 시작을 알린 바로 이 장면.

*** 요 대사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새롭게 시작하시오. 만약 우연히 만났을 때 그렇지 않다면, 내 검이 무정하다 원망치 마오” 오랫동안 쫓던 스승의 원수를 용서하며 놓아주던 대취협의 풍류 가득한 대사.

모은영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