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10대>6.쿼터리즘이 지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학교성적이 상위권인 서울K고 1년 金상현(16.서울강남구신사동)군은 최근 삼국지에 대해 얘기하는 친구들 틈에 끼었다 창피를 당하고선 당장 5권짜리 삼국지를 구입했다.그러나 10쪽정도읽다가 포기하고 10권짜리 만화 삼국지를 사 하 루만에 모두 읽어치웠다.
『쉽잖아요.내가 왜 책을 샀는지 모르겠어요.책을 읽는 것은 확실히 시간낭비임을 실감했어요.』 金군은 요즘 소설을 읽고 싶으면 읽기 전에 그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있는지 확인한다.영화가 없을 경우라도 金군은 실망하지 않는다.서점에 가면 아무리 긴 소설도 단 1~2장 분량의 발췌본을 얼마든지 구할 수있기 때문이다.
『비디오라면 밤이라도 새지만 소설책은 10장도 넘기기가 힘들어요.재미가 없잖아요.』(서울J고 2년 崔철민군) 『아무리 좋은 아빠의 충고라도 10분이 넘어가면 온몸이 뒤틀려요.』(서울S여중 3년 金양희양) 순간적 적응력을 요구하는 고속정보통신과영상매체의 급격한 팽창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은 한가지 일에 진지하게 접근하고 집중하는 능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필요를 느끼지 않고,그럴 능력도 없다.자극에 즉각 반응하지만 금세 관심이 바뀌 는 감각적 찰나주의가 이들의 한 특징이다.
지난해 10월 무역센터에서 벌어진 우표수집전을 구경한 서울J여중 3년 鄭모(15)양은 우표수집을 결심했다.정신없이 돌아다니며 2주동안 1백여장을 모았으나 그것으로 그만뒀다.재미가 없어 금방 시들해진 것이다.
鄭양의 어머니 朴모(48)씨는 『판단하고 시작하는데 단 몇초도 걸리지 않는 것같아 딸아이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느낀다』며 『부모도 싫증나면 수집하던 물건처럼 내팽개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걱정했다.
5초를 견디지 못하고 TV채널을 마구 바꿔대는 리모컨,책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상상의 세계를 허용하지 않는 영화.비디오,한치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고속정보사회 속에서의 컴퓨터.이들 첨단 이기(利器)들에 둘러싸인채 10대 들은 깊은 사고(思考)와 인내심을 뿌리내릴 땅을 잃어버린 것이다.그 결과가 찰나적 감각주의라고나 할 쿼터리즘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쿼터리즘이 반드시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물론 있다.청소년 대화의 광장 김태영박사의 시각.『고속정보사회에서의 자기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한 청소년들이 쿼터리즘의 지배를받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쿼터리즘이 부정적 결 과만 가져오는것은 아니다.직관적 사고나 「덩달이 시리즈」같은 감각적이고 순발력이 필요한 아이디어를 창안해내는데는 천재적이다.이는 또다른가능성이라고 본다.』 연세대 교육학과 한준상(韓駿相)교수는 『쿼터리즘의 출현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이나 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가정과 학교교육에서 이제 이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돼야 할 때다.
김준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