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한반도기류>8.북한"對美관계 개선만이 살길"온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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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북한은 끈질기게 미국과의 대화만을 고집하고 있다.여기에는 북한과 미국의 국내정치적 요인에다 주변국과의 역학관계가 얽혀 있다.이 틈바구니에서 최대한 이득을 챙기겠다는 계산이다.
북한이 대미(對美) 관계개선을 통해 노리는 것은 경제적 실리와 함께 체제유지 및 김정일(金正日)정권의 정통성 확보.「원쑤의 나라」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미국의 항복」으로 인민들에게 미화함으로써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승리」로 마무리 짓는다는 술책이다.미국.일본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극적 장면이 김정일의권력승계에 무게를 실어주리라는 기대다.
북한은 체제의 정통성을 대외관계의 뿌리라고 일컫는 「타도제국주의동맹(ㅌ.ㄷ)」에 두어 왔다.1926년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해 김일성(金日成)이 주도적으로 결성했다는 「ㅌ.ㄷ」은한국전쟁 이후 미국에 대한 적대감정으로 이어져 체제결속을 도모하는 구실을 해 온 것.김정일의 권력승계를 이번 10월로 예측하는 것도 「ㅌ.ㄷ」이 결성된 날이 10월17일이기 때문이다.
일부 소식통은 연락사무소 개설에 이어 김정일이 미국을 방문해클린턴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대미 관계개선 과정에서 수위조절만 잘하면 체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한으로 줄인 채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얻어 낼수 있다고 확신하는 듯하다.이미 적지 않은 미국기업들이 북한진출에 나서고 있고 상당수 기업들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나진.선봉지대에는 산업시설뿐 아니라 관광단지 조성도 추진되고있다.이 지역을 방문한 미국 기업인들이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유명한 휴양지 케이프 커드(Cape Cod)와 흡사하다고 귀띔한게 동기가 됐다는 후문이다.최근에는 나진.선봉 지대와 백두산.
금강산 및 묘향산의 관광지역을 연결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한편 북.미간의 지나친 접근은 지난 40년간 북한의 전통적 우방임을 자처해 온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하게 된다는 사실도 북한은 염두에 두고 있다.중국과 옛 소련간의 알력을 최대한 활용해 외교적 실익을 추구했던 경험을 갖고 있는 북한 이 이제는 미국과 일본까지 끌어들여 「양다리외교」를 「4각외교」로 다변화하는 셈이다.당장 러시아와는 오는 9월로 유효기간이 끝나는 북.러조약의 개정작업이 걸려 있다.4자회담 등 한반도관련 논의에서 제외돼 발끈해 있는 러시아를 부추겨 조약개정협상을 더 유리하게 유도해 내려는 물밑작업이 한창인 것으로 전해진다.또한 경화(硬貨)결제를 요구해 북한을 애먹였던 중국에도 더 적극적인 북한지원책을 유도하기에 좋은 입지를 확보한 것이다.
북한은 90년대 이후 중국과 러시아를 제치고 제1수출대상국으로 자리잡은 일본과의 수교협상 과정에서 건네질 적지 않은 배상금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다.어쩌면 미국기업들의 투자보다,빈사상태에 빠진 북한경제에 즉각적인 효과를 가져다줄 「잿밥」을 빨리 먹기 위해서라도 대미 관계개선을 서둘러야 할 입장이다.대일(對日)수교는 대미 관계개선 속도와 맞물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정부와의 대화는 신중한 자세로 접근할 것으로 관측된다.휴전협정 당사자가 아니라는 명분과 더불어 김일성사망 때의 조문거부를 구실로 최대한 직접대화를 기피하려고 할 것이다.대남(對南)대화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한국으로 부터 최대한의 양보와 실리를 확보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그러면서도 남한기업들에 추파를 던지고 있다.이미 대남수출이 북한전체 수출량의 16%를 넘는 등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김용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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