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한국으로 수학여행 30년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야마토(大和)에서 아스카(飛鳥)로 이어지는 일본 문화의 원류는 신라와 백제 문화입니다. 학생들에게 올바른 문화관과 역사관을 심어준다는 취지에서 매년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오고 있습니다."

일본 나라(奈良)현에 있는 지벤(智辯)학원의 후지타 데루키요(藤田照淸.73) 이사장. 그는 재단 산하 나라고등학교와 와카야마((和歌山)고등학교의 수학여행단 700여명을 인솔해 올해도 변함없이 한국을 찾아왔다.

수학여행단은 고교별로 나뉘어 지난 19일과 20일 시모노세키(下關)에서 배를 타고 부산에 도착했다. 이들은 경주.부여를 둘러보고 민속촌.경복궁을 관람한 뒤 휴전선을 방문하는 4박5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23일과 24일 귀국한다.

후지타 이사장이 처음 한국에 수학여행단을 보낸 것은 1975년이었다. 당시 한.일 관계는 74년 일어난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으로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주위에서 만류했지만 '지금 가지 않으면 앞으로 더 가기 힘들다'는 생각에 강행했다. 이후 올해까지 30년째 한 해도 거르지 않아 지금까지 연인원 1만5000여명의 학생이 한국을 다녀갔다.

그는 한국을 자주 찾다보니 자연스레 지한파(知韓派)가 되더라고 말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통해 폐허에서 일궈낸 '한강의 기적'을 실감했다고 했다. 일제 35년을 속죄하는 의미에서 한국행 수학여행을 최소한 35년간은 지속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는 말도 했다.

강산이 세번이나 변한다는 30년간 수학여행단에는 에피소드도 많았다.

처음 수학여행을 왔을 때는 보리밥이 입에 맞지 않고 김치도 생소해 일본에서 가져온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난데없는 사이렌 소리(민방위 훈련)에 놀라 우르르 버스에서 내려 우왕좌왕했던 적도 있었다. 부여에서는 숙박시설이 마땅찮아 학생들을 십여개 여관에 분산 투숙시켰고, 방에 욕실이 없었기 때문에 저녁시간에 마을의 대중탕을 전세내 사용하기도 했다.

지난해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으로 인해 수학여행이 중단될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의 대응 태세를 신뢰했던 데다 지금 그만두면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는 생각으로 계속 밀어붙였다.

한국에는 충분히 많이 갔으니 이제 수학여행지를 바꿔보자는 의견도 적지 않지만 후지타 이사장은 '한국행에 반대하면 수학여행 자체를 없애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버티고 있다며 웃음을 지었다.

지벤학원의 와카야마고교는 고시엔(甲子園)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세번이나 우승한 야구 명문이다. 간사이(關西)지방에서는 대학 진학률이 상위 5위 이내에 들 정도로 학업 성적도 우수하다. 와카야마고교는 서울의 한양공고와 자매결연한 사이다.

글=김세준, 사진=변선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